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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검은콩

사진= 박양규 님/11월 22일
해무로 뒤덮인 완도항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3.11.23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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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인가?
 어김없이 눈을 간지럽히는 햇살과 새소리. 아침이다. 어젯밤 있던 일이 꿈인지 생신지 헷갈릴 만큼 맑은 아침이다. 내가 집에 어떻게 왔더라?
 매번 산책할 때마다 마주치는 길고양이가 있다. 어렸을 때 키웠던 턱시도 고양이랑 똑같이 생긴 아이라서 간식도 챙겨주었다. 자기가 좋아하는 간식을 줄 때면 손등에 자꾸 자기 머리를 들이대는 거 보면 싫지는 않나 보네– 싶었다.
 나는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유튜브 검색 기록도 온통 ‘고양이 언어’, ‘햄스터 먹이 주기’, ‘강아지 산책’ 같은 것들뿐이다. 그래서 친해진 길고양이가 너무 반가웠다. 사실 오랜만에 정을 붙인 동물이라 집에 데려오고 싶었지만 그럴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 턱시도 고양이를 보내고 나서의 아픔이 아직도 기억나서. 근데 그 길고양이가 일주일 전부터 산책길에 등장하지 않았다. 마치 오페라의 유령 가면같은 검은 얼룩무늬를 가지고 있던 그 얼굴이 자꾸만 아른 거린다. 로드킬 당한 건가? 누가 데려갔나? 밥은 잘 챙겨먹고 있나? 아, 이래서 정 안 붙이려고 했던 건데. 
 신경이 쓰여 평소 부르지도 않던 길고양이에게 ‘나비’라는 이름으로 괜히 불러도 보았다.
 “나비야~ 오늘도 너 없이 산책하려니까 심심해~ 어딨니 나비야~”
 사흘만에 그 통통한 얼굴을 다시 보았다. 괜히 눈물이 울컥하다니, 자존심 상해. 이 녀석은 애탔던 내 마음은 몰라주고 오랜만에 먹는 간식이나 신나게 받아먹는다. 참나. 금세 다 먹었는지 오늘도 꼬리를 하늘이 뚫려라 쳐들고는 앞장선다. 그동안 어디에서 지냈는지 따라나 가보자.
 약 30분을 걸어서 도착했다. 우리 동네에 이런 단독주택이 있던가? 옛날에 할머니랑 살았던 집이랑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가다가 멈칫하니 나비가 야옹-하며 따라오라고 재촉한다. 열려있는 문을 보니 아마 주인에게 버려진 빈집인가보다. 어디서 아기 고양이들이 애옹애옹 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래서 사흘동안 보이지 않았나? 나비가 달려가는 곳을 쳐다보니 하얀 고양이, 검은 고양이, 얼룩 고양이가 섞여 대략 5마리로 보이는 새끼들이 있다. 너도 참 고생이다. 
이 날씨에 다섯 식구나 책임져야 하고. 나비를 따라 들어온 집을 둘러보니 주인에게 버려진지 오래된 것 같다. 어릴 적 집이랑 구도도 비슷해서 괜히 이곳 저곳 둘러보았다. 
 이층에 올라가 보니 내 방문과 똑같은 무늬의 문이 하나 있었다. 문을 열어볼까 하다가 괜히 남의 집을 뒤지는데 죄책감이 들어서 멈칫하니 어느새 올라온 나비가 옆에서 들어가라는 듯이 야옹거린다. 참나. 넌 독심술 쓰니? 홀린 듯 방문을 연 순간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하얀 빛이 나와 나비를 덮쳤다. 
 아, 어지러워. 남의 집에 함부로 들어왔다고 벌 받나? 정신을 차려보니 낡고 작은 TV에서 무언가 보인다. 어? 저거 나랑 검은콩인데...? 작고 흐릿한 화면에서는 어릴 적 할머니 집에서 검은콩과 술래잡기를 하는 장면이 흘러나온다. 그때 누가 영상을 찍은 사람은 없을 텐데? 눈을 비빈다. 이게 꿈인지 아닌지 믿기지 않아 같이 들어온 나비를 찾으려 내 발치를 내려다보니 나비는 수염 하나 보이지 않고 편지 하나만 덜렁.

‘안녕 언니 나 검은콩
나는 할머니랑 술래잡기하면서 재밌게 지내고 있어!
구름 속에 숨으니깐 할머니는 잘 못찾는 거 있지 ㅋㅋ 
언니라면 잘 찾았을 텐데! 언니가 매일 밤 기도해주는 덕에
드디어 아플 때 언니한테 말할 수 있게 됐어.
언니가 너무 보고 싶어서 마음이 아팠어
그래서 이렇게 찾아왔어! 
이제 다른 고양이랑 살아도 질투 안 할게 대신 나 잊으면 안돼! 사랑해!’

 하하. 어릴적 검은콩이 아팠을 때 애타게 기도했던 걸 들었나 보다.
 엄마가 버리듯 할머니 집에 날 두고 갔을 때도,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와서 이불 속에서 엉엉 울 때도, 할머니가 쓰러져 119 아저씨들을 기다릴 때도, 수능이 얼마 남지 않아 밤낮 가리지 않고 공부했을 때도 늘 검은콩은 곁에 있었다. 그런데 검은콩이 무지개 다리를 건널 때 곁에 있지 못했다. 
그 죄책감에 한달을 울었다. 나의 또 다른 가족의 마지막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근데 그 짐을 덜어주려고 이렇게 찾아왔구나. 너는 끝까지 나를 위로해 주는구나. 이제는 나비를 가족으로 맞을 준비가 된 것 같다. 아 그런데 왜 이렇게 어지럽지.
 눈 떠보니 아침이다. 내 침대이다. ‘꿈인가?’ 생각하던 중 나비가 입에 새끼 한 마리의 목덜미를 물고는 내 방으로 들어온다. 꿈이 아니었나 보다. 검은콩이 진짜 날 보러 왔나 보다. 

 

김지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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