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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언의 입술이 열리며 너를 사랑한다 말할 때

  • 신복남 기자 sbbn2000@hanmail.net
  • 입력 2023.12.21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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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의 연속은 길 위에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로 걸어왔다. 서로 보이지 않는 끌림이 있다. 형언할 수 없는 순간만이 있었다. 꽃과 나무 사이에 이름 없는 바람이 와서 또 길을 떠난다. 


두꺼운 입술이 너를 사랑한다고 말할 때 너는 아직 가냘픈 작은 여인이었다. 산이 움직이는 것은 네가 붉은 열정이 아직 살아있기 때문이다. 덥석 땅에 떨어지는 너의 모습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짧고 긴 여운이 번갈아 가며 너는 아직 울림이 깊다. 
너의 입술과 심장 사이는 얼마나 먼 거리인가. 이제 손을 잡을 때가 됐다. 그러나 족히 닿을 수 없는 거리. 그래서 눈물만 흘린다. 나무와 나무 사이에서 떨림이 있다. 꽃과 꽃 사이에 기다림이 있다. 해와 달을 넘어가는 곳마다 너의 역사가 숨어 있다. 세월이 가니 꽃잎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꽃이 너를 간절히 기다리다 눈물의 무게에 이기지 못해 떨어짐이다. 삶은 한자리에 있어도 여행하고 있다. 그 여행은 늘 깨어있으라 한다. 


세상 명분에 빠져 진정 자기의 길은 없다. 그 어떤 가치관도 나를 알지 못하면 진정한 진리를 알지 못한다. 나뭇잎이 다 떨어지고 겨울나무 사이는 쓸쓸하다. 외롭고 한적하나 그것이 오히려 눈물을 마르게 한 적이 없다. 푸른 잎이 한창일 때보다 허허로운 공간에서 오고 가는 마음만은 충만하다. 내 운명의 걸음걸이를 재고 있는 나무는 침묵한다. 


열렬한 빨간 꽃이 되었을 때 묵도한다. 꽃과 꽃 사이에 사랑하는 얼굴이 생각날 때 묵언한다. 세상 명분에 휩싸여 그렇게 말을 많이 하여도 누가 알아주는 사람이 있던가. 온몸이 꽃으로 물들이고도 항상 조용하다. 동백꽃 둘레에다 그 마음의 깊이를 세려 놓아도 말할 수 없는 너. 오직 떨림과 흔들림뿐이다. 나무와 나무 마음과 마음 그 흐름은 분명 살아 움직인다. 그래서 사랑을 만들고 기다림이 있다. 우연한 운명 속에서 나의 움직임을 사랑한다. 우연한 꽃잎 속에서 나의 작은 움직임이 눈물이 되듯이 말이다. 타인으로부터 무엇인가 흐르고 있다. 


어느 정도 떨어짐 속에서 자기장이 형성된다. 이 속에 규칙적인 움직임 속에서 전기 에너지가 발생한다. 사랑의 눈은 결코 말이 없다. 조용한 정적 속에 사랑의 에너지가 흐를 뿐이다. 
서로 간격을 두어야 떨림이 형성된다. 또한 그리움도 같은 뜻일 거다. 마음과 마음의 흐름 따라 그들만의 고요한 관계가 된다. 겨울에 빨간 열매를 달고 있는 나무가 있다. 남천나무, 명감나무, 호랑나무, 산수유, 피라칸다 등이 빨갛다. 


올겨울 가장 추운 날에 조용한 열정으로 부르짖는다. 두꺼운 빨간 입술이 있는지 없는지 침묵한다. 동백꽃 뚝 떨어지는 소리에도 놀라지 않는다. 삶과 죽음의 경계도 없이 묵언의 기다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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