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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운명이 찾아오더라도 비장한 결정권은 나에게

  • 신복남 기자 sbbn2000@hanmail.net
  • 입력 2024.01.26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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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덮인 생명들은 세찬 바람을 피할 수 있다. 많은 생명은 눈 때문에 추위를 피할 수 있다. 자연은 늘 변화무쌍하다. 자연환경에 적응하면서 살아왔다. 운명은 스스로 오는 것 같지만 받아들인 쪽은 자기 결정권도 있다. 결정권 범위 안에서 최대한 삶을 꾸려간다. 


나무는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눈보라가 치면 그런대로 살아간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자기 운명의 결정권이 나온다. 나도 모르게 왔더라도 보낼 때 그냥 보낼 수 없을 경우가 많다. 


나무는 아름다운 계절의 결정권을 갖고 있다. 연분홍 치마를 입고 산 능선을 타고 내려온 봄이야말로 최절정의 선택이다. 자연에 순응하였기에 아름다운 풍경이 나온다. 순응과 자기 결정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갓 나은 아기의 아름다움은 엄마의 젖몸살을 앓는다.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 위해 꽃 몸살을 앓는다. 아름다움은 순차적으로 순응하는 단계를 걸치지만 이에 못지않은 앓음이 동반한다. 죽지 않고 살 만큼 용기가 필요할 것이고 주위에 따뜻한 사람들도 있어야 한다. 길가에 이름 없는 풀들은 하얀 눈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얀 겨울이 오히려 따뜻한 이불이 될 것이다. 나뭇가지에 눈꽃은 기온 차가 심해야 수증기가 생기므로 얼음꽃이 생긴다. 그 아름다운 결정은 순식간에 생긴다. 


또한 없어진 것도 순식간이다. 살면서 나도 모르게 생겼다가 없어지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아마 사랑하는 일이 이처럼 왔다가 속절없이 가버리면 좋을 것인데 그렇지 못하는 게 인간의 정이다. 자연 속에 살아있는 것이 아름답고 그 마음에 나도 함께한다. 죽은 나뭇가지에 어름 꽃이 생기지 않는다. 그래도 살아있어야 그 아름다움을 만들 줄 안다. 


태를 묻고 정이 쌓이는 고향 산천이 왜 아름다운가. 내 운명이 주어지는 이 땅은 정이 많기 때문이다. 슬픔과 좌절 그리고 환희가 있는 곳에는 정이 쌓이기 마련이다. 계절 따라 피는 꽃은 절대 바깥에서 피지 않는다. 


마음속에서 먼저 피어있기에 보인다. 왜 외로운 꽃이 자꾸 보이는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가 그 길을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내가 살고 있는 땅에서 가깝게 있는 생명에 대한 아름다움이 깊다. 


아무리 좋은 풍경이라도 마음에서 비롯된 풍경이 아니라면 진정한 아름다움이 아니다. 이것은 운명이 스스로 와서 순응하더라도 비장한 결정권은 나에게 있다. 하나의 풍경을 보더라도 길고 긴 시간 위에서 본다. 파노라마처럼 흘러간 풍경일지라도 어느 한순간이 다가올 때 기쁨의 풍경이 될 것이다. 


아름다움은 마음의 본질이자 실존이다. 오늘 내 앞에 살아있으므로 네가 아름다운 풍경이 되고만다. 나와 너는 가깝게 있으면서 저만큼 있다. 고요히 생각할 여백을 두면서 마음은 두텁게 흐르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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