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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부부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4.01.26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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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알면 둘이 아프고
당신이 모르면 혼자 아파요

먼 훗날, 그때  말하려고
말하지 않았어요
사슴의 탈을 썼습니다

 

핸펀이 방전됐다. 나를 꼭 닮았다.
감자와 땅콩이가 우당탕탕 한바탕 뛰놀더니 조용해졌다. 꿈과 현실을 오가며 잠이 깨는 아침이다. 감자가 일어날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내가 일어나지 않자 소같은  발로 잠을 깨운다. “쉬는 날이라고. 나가!” 말귀를 알아 들었는지 일단 후퇴 시늉을 하지만 이내 다시 쳐들어 온다.


“나 쉬는 날이다고. 잘 거라고. 나가.” 감자와 말을 하다 보면 감자가 말을 하려고 옹알이 하듯 한다. 내가 일어나야 감자에게 이로운가 보다.목소리도 칼칼하게 잠긴 아침 몇번이고 말달려 오는 감자의 발자국소리가 전쟁터 말발굽 소리인양 평화로운 내 쉼을 부순다.


감자야, 감자야, 감자야...돌대가리 감자야. 너를 어쩜 좋냐. 너를 많이도 미워했나보다.


어쩜, 좋으냐. 속옷이란 속옷을 다 물어뜯어 입을 게 없어 근근히 산다면 너를 미워한 벌을 받은 게지. 속옷 뿐이더냐. 신발은 왜케 짓 물어뜯냐. 너를 어찌 사랑할 수 있것느냐. 너가 괴물인지 내가 괴물인지 헷갈린다. 아작아작 닥치는 대로 씹어대는 너를 어쩜 좋으느냐. 너무 쓸쓸한 날 내 머리핀이 해체된 걸 보며 감자를 사랑하기로 했다.


너는 어쩌면 또 다른 나일지도 모를 일이다.
한 남자와 한 여자는 참 많이 싸웠다. 누구나 사랑을 한다. 그러다 이어 살기도하고 헤어지기도 하고 너를 사랑한다 말하지만 사실은 나 자신을 사랑한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너를 사랑하는 거라. 나와 다른 너를 사랑하면서 하나 되기를 바라는 거다. 내가 너에게든 너가 나에게든 그러니까, 사랑은 내가 사랑하기에 너가 되는 거라. 알고보면 자기 사랑인 것이라. 나를 깎든 너를 깍든 사랑을 하게 되면 반드시 서로 변화를 갖게 된다. 


나만의 숨 쉴 구멍을 찾아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네플릭스 정주행 했다. 마음의 근육을 튼실히 키워야겠다. 몇 전 전 남편과 함께 정신과 심리상담 받은 적 있다. 선생님, 그게 어려워요. 그게 안 돼요. 두 분 모두 착하십니다. 그렇지만 두 분 모두 강하십니다. 두 분은 착한 사람으로 인정 받고자 겉을 채우십니다.


“솔직 하세요.” “겉으로 소리내어 말하세요”
“당당 하세요.” 왜, 그런 생각을 해야 하나요."


“뭐가 잘못 되었나요?” “당신은 남편에게 눌려 있습니다. 당신 생각이 그리 몰고 갑니다. 당신은 절대 약하신 분 아닙니다. 자체가 당당하십니다. 그래야 삽니다. 서로 많이 다르신 두 분입니다. 다름을 인정 하세요. 나에게 맞추기와 그를 맞추려 애쓰지 마세요. 한 분은 집에만 있어도 괜찮은 분, 한 분은 집에 가둬 두면 죽습니다. 서로 다르신 두 분 입니다.”


선생님께서 그때 그 상황 기분이 어땠냐 물으셨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고맙기도 미안하기도 하지만 내 마음속 깊은 곳에는 남편에 대한 답답함과 섭섭함이 그대로 있었다. 어떤 변화를 갖기엔 눌려지는 중압감이 너무 컸다.


선생님... 그래요 난 무서워요. 남편은 내게 말을 함부로 하거나 행동을 거칠게 하거나 신경을 쓰게 하거나 하지 않습니다. 범생입니다. 삐뚤어진 것을 인정하는 것도 자신이 삐뚤어져 보이는 것도 허락지 않는 모범생입니다. 내게 강요하지는 않지만 어떠한 실수, 어떠한 일이 있을 때는 얼굴표정, 눈빛에 그대로 들어납니다.


참았던 감정이 그대로 보이고 그때 한마디 한마디는 무섭습니다. 실수니 싫어 하는 것을 하지 말아야겠다 각오해도 돌아서면 잊어버리고 또 혼납니다. 그럴수록 튕겨쳐 나오는 나를 봅니다. 벅찹니다. 당신의 남편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이 당신이라 합니다.


어떤 생각으로 분노를 폭발시키면 시간이 지나 분노했던 결과인 자신만 남고 화나게 했던 어떤 상황은 사라진다. 화가 치밀어 쓰나미 같은 분노를 참으면 그 분노를 삭히느냐 자아는 말을 잃어버린다. 강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자라는 말이 있다.


“자신은 스스로 지켜야 한다”
불구덩이에서도 정신을 똑바로 차려서 분노하지 않는 순한 언어로 대응해야 한다. 세상이 싫어싫어 실어증의 거친 호흡을 부드럽게 바꾸어 내쉬어 나를 구해야 한다.


똑똑똑... “당신의 삶은 평안하십니까” 겨울 한복판에서 삶이 내게 질문해오는 것만 같다. 어느 날 새벽 두 시쯤이었다. “심장이 뛰지 않는 여자가 있어” 꿈속 음성을 들으며 잠에서 깼다. 꿈자리가 어수선했다. 그 여자는 바로 나였다.


“살고 싶어” 찾아 헤맸던 숨조각들이 어느 순간 잦아들더니 “살기 싫어. 살기 싫어.” 깊은 우울의 언어가 툭.뱉어졌다. 어디로 가야할까,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이성적으로 상황을 직시하며 숨 쉴 구멍을 찾고 있었다.


작은 바람에도 울컥이는 날 있다. 살아야 하는  날의 고백이 그랬다. 찬바람은 플라타너스나무를 거칠게 잎을 훑어놓았다.
잎들이 도로에 무법자들처럼 어수선했다.


꼭 전쟁난 것만 같았았다. 그냥 길을 한참 걸었다  달이 구름에 꼴까닥하더니 다시 말짱하게 떴다. 사는 게 참 먹같다는 생각을 했다. 
길 위에서 거친 숨을 모조리 토해냈다.


어떤 일이 갑작스럽게 있을 때마다 무너지는 좌절감으로 순간 어지럽다. 별일 아닌데 별일이 되는 순간, 늘 불안감이 엄습하고 습관적인 감정들의 쓰나미가 나를 덮친다. 그런 날은 물건도 흘리고 다닌다. 남편에게 핸드폰 잃어버렸다고 말했다. 핸드폰 없이 살란다.


지금도 잃어버렸고 앞으로도 또 잃어버릴 거라면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극단적인 언어를 선택하고 곧바로  공격했다. 말이 안통해 속상하고 내마음을 몰라준다고 팔딱거렸다.


숨이 막혔다. 답답한 마음을 어떻게 표현 못하고 소리를 내질렀다. 
다음날 아침 다시 당신은 상대의 감정을 모르는 싸이코페스라고 쏘았다. 
그러자 창자를 끄집어내듯 괴성을 지르더니 나 때문에 미쳐버리겠단다. 내 속에서도 다시 울화가 더 치밀어 올라왔다. 이건 완전 자폭이구나. 그 순간 생각이 들었다. 그 찰나에 호흡이 차분해졌다. 이것이 나의 큰 변화다.


“미안” 남편에게 문자를 넣었다.


처음으로 미안하다고 진심을 말한 거 같다. 당신 그동안 나와 살기 참 버거웠겠다. 나를 만나는 순간부터 먹여 살려야한다는 원죄로 지옥에 살고 있는 당신에게  묻고 싶다. “당신 지금 행복해?” 모든 것을 다 받고도 행복하지 않은 나는 욕심쟁인가. 당신 지금부터 자유로웠음 좋겠다.


당신 행복했음 좋겠다. 무엇에 갖혀 허덕이고 살까. 당신 내게 참 고마운 사람인데 나를 참 힘들게 해. 내가 위로해 주고 싶은데 나로 안 되는 건가. 당신 나로만 행복하지 않은 건가.


바부탱이, 바부탱이.


칙칙칙 달그랑달그랑 압력솥 뚜껑 추 돌다돌다 도대체 정신을 어디다 두고 사느냐  냄새로 오는 지청구 한 바가지. 단지 밥 하는 것을 아주 잠깐 잊었을 뿐인데 냄비가 새까맣게 탔다. 내 맘도 새까맣게 탔다.


명치 끝에 심장 하나 걸렸다. 턱턱 심장이 쪼개어진다. 얼마큼 아파야 아프다고 말 하는지 몰라 아프다고 말 할 땐 숨이 끊어지기 직전이었다. 
숨이 끊어진다는 생각이 들 때 그 마지막 순간, 남겨야 할 말이 있다면. 


“내가 당신, 많이 사랑했다고.”

 

 

이의숙 필수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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