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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길위에 김대중’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4.02.01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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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통해 영화가 제작됐다는 소식을 알게 됐고 영화를 홍보하는 단편적인 장면들을 스치듯 보면서 기회가 되면 영화관에서 제대로된 영화를 볼 수 있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이윤추구에만 열중하여 상업영화와 극 영화에 쏠려있는 상영관들의 ‘기울어진 운동장’ 때문에 상영관을 확보하지 못해 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쉽게 주어지지 않았었다. 그러던 중  많은 사람들의 요청에 의해 완도빙그레시네마에서 당초의 계획을 바꿔 영화『길위에 김대중 』을 상영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듣고 영화관을 찾았다. 


영화『길위에 김대중 』은 탄생 100주년을 맞아 일생을 대한민국 민주화 역사와 함께했던 민주주의자 김대중(1924~2009)의 삶과 투쟁을 다큐멘터리로 제작된 영화다. 이 영화를 만든 민환기 감독은『청춘선거 』,『노회찬6411 』등 일상의 정치를 깊이있게 다뤄온 영화 감독으로,『길위에 김대중 』을 통해 정치인으로서의 김대중을 집중 조명했다. 납치ㆍ살해 위협ㆍ투옥과 사형선고 등 그가 감내해야 했던 삶의 굴곡은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일상화ㆍ보편화되기까지 얼마나 험난한 역경과 희생을 거쳐야만 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126분 분량으로 완성된 영화『길위에 김대중 』은 고향 신안군 하의도에서 목포로 나와 목포상고를 졸업한 후 사회에 진출하여 성공한 청년사업가를 거쳐 정치인으로 변신하여 박정희ㆍ전두환 독재체제에서 갖은 고초를 겪으며 정치인으로 담금질하던 김대중이 1987년 16년 만에 광주로 돌아가는 여정으로 마무리된다.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만들어진 영화는 김대중평화센터에 아카이브(archive, 오랜 세월 동안 보존해 두지 않으면 안 되는 가치가 있는 자료를 기록보관한 파일)된 사진ㆍ영상ㆍ문서와 퇴임 후 녹음한 회고록 육성자료 등이 영상자료로 활용됐다. 특히, 1980년 ‘김대중내란음모 조작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고 청주교도소에 복역 중이던 김대중을 1982년 10월 이희호 여사가 안기부 간부와 면회 가서 미국 망명을 설득하고 망명 결정에 대한 서약서를 쓰는 과정이 40년만에 처음으로 세상에 공개된다.

 

필자는 정치에 대해 관심이 많지않았고 직업의 특성상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평범한 직장인이었기 때문에 정치인 김대중에 대해 매스컴 등을 통해 알려진 내용을 막연히 알고있을 뿐, 그가 어떤 일생을 살아왔고 우리나라 정치사에 있어 어느 정도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어떤 역할을 했으며, 민주주의 발전에 어느 정도 기여했는지 자세히는 알지 못한다.


영화를 감상한 후 정치인 김대중에 대해 알아보는 기회를 가졌다. 김대중은 신안의 많은 섬 중 하나인 하의도에서 태어났고, 목포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사회에 진출하여 해운사업에 뛰어들어 큰 돈을 벌어 젊은 나이에 성공한 청년사업가로 탄탄대로를 걷다가 6.25전쟁을 겪은 후 정치에 입문한 뒤 겪은 파란만장한 인생역정을 겪어야만 했다. 다섯 번의 죽을 고비ㆍ네 번의 국회의원 낙선ㆍ세 번의 대통령 낙선ㆍ수감 71개월과 망명 생활 37개월이라는 보통의 인간으로서는 감내하기 힘든 고통스런 길을 올곧게 걸어온 불굴의 정치인이다. 


김대중은 그의 존재를 두려워하는 정권의 권력자에 의해 지역분열주의자와 빨갱이로 낙인찍히게 된다. 그로 인해 오랫동안 국민 누구나 비난하기 좋은 비호감 정치인으로 왜곡되어 대부분의 경우 부정적인 모습으로 폄하됐다. 대통령병 환자라고 했고 호남에 대한 혐오와 반감의 상징으로 매도되었으며, 이념대립이 심각한 시절에는 ‘빨갱이’라고 불렀다. 


김대중의 정치적 성향은 일반적으로 진보와 보수적인 사상을 둘 다 가진 인물로 평가되고 있는데, 구 공산권의 붕괴 이후 중도개혁주의를 내세웠고 기본적으로 자유주의적인 개혁을 추구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첫번째로 민주당계 정당이 배출한 대통령으로, 같은 민주당계 진보정당 출신의 노무현과 문재인 대통령들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가장 보수적이었다고 평가되고 있다.  


정치인 김대중은 국민들의 뇌리에 오랫동안 남아있을 많은 어록을 남겼다. 몇 가지 기억에 남을만한 발언을 소개한다. 국내적으로는 “대중경제는 복지사회의 실현을 이념으로 한다.”고 했다. 이는 개발독재에 의한 권위주의적 산업화 전략을 비판하고, 대안으로 민주적 경제발전 철학을 담은 자신의 정책구상인 ‘대중경제’을 제시했다. 대중경제는 산업간ㆍ지역간ㆍ도농간ㆍ계층간 불균형에 따른 양극화를 해소하는 균형발전 전략이며 복지사회를 지향했다. 


대외적으로는 한미동맹을 우선시하면서 북한과의 대화와 협력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햇볕정책을 주장했고,일본 대중문화 개방을 추진하는 등 일본과의 관계도 원만히 하는 외교정책을 펼쳤으며, 대중국 외교에 있어서는 양국 사이의 이해와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길을 개척했다. 외교와 관련한 발언 중 기억에 남는 것은 “도랑에 든 소가 양쪽 언덕의 풀을 뜯어 먹는다.”는 표현으로, 이는 강대국에 둘러싸여 있는 우리나라가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우리의 실리를 추구하는 외교정책을 펼쳐야한다는 인식을 보여주는 구체적인 사례로, 김대중 외교의 실용주의적 성격을 보여주고 있다. 


이밖에도 “정치인은 상인적 현실감각과 서생적 문제의식을 함께 갖춰야 한다.”고 발언하여, 정치적 실천을 위해 도덕성과 정당성도 중요하지만 더불어 구체적인 결과도 중요함을 강조했다. 
또, “행동하는 양심이 되자,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다.”는 발언은, 유신독재에 맞서 싸우던 시기에 민주화 이행을 위해서는 속으로 생각만 갖고 있어서는 안 되고 직접 참여와 실천이 절실함을 강조했다. 


영화가 끝날 때 이번 작품이 끝이 아니고 후속 편이 나온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었다. 3부작으로 기획된 김대중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은 현재 다른 감독에 의해 한창 작업 중이라고 한다. 2편은 대통령선거에서 또다시 낙선의 쓴 잔을 마셨던 1997년 대통령 선거를 중심으로 다룬다고 한다. 앞으로 개봉될 영화가 정치인 김대중이 시련을 딛고 다시 일어서 대통령에 당선되어 자신의 정치적 포부를 풀어가는 성공의 시간을 어떻게 다룰지가 궁금하고 기다려진다.

 

이승창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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