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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기다리는 기쁨이 푸른 바다가 되어

  • 신복남 기자 sbbn2000@hanmail.net
  • 입력 2024.02.02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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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의 일상이 풍경화다. 학교에서 풍경화를 그릴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 추억의 그림이 되고 만다. 삶을 열렬히 사랑할수록 풍경화는 아름답다. 당장 내 앞에 이익이 안 되는 것들이 지나고 나면 그것이 내 옆에 평생 간직하고 산다. 초등학교 때 운동회는 추억하기에 마침 좋다. 이때 사진 한 장의 촌스러움이 이게 나였다는 사실이 웃음이 나온다. 나이에 따라 풍경화는 다르다. 봄에 벚꽃이 피어있는 것을 보고 봄을 알았다. 길 따라 피어있는 코스모스를 보고 가을을 알았다. 


아름다운 인연과 함께 피어있는 꽃이 젊은 날의 풍경화다. 그런데 한 번도 보지 못한 꽃이 마음의 풍경화를 만들 때가 있었다. 
바로 해당화다. 문학과 시에서 듣는 꽃이다. 아름다운 이야기 속에 들어 있는 꽃이 마음의 꽃이 된다. 상상 속에서 있던 꽃이 실제 보이고 이제까지 보이지 않던 꽃들이 보인다. 


정상만 바라보고 줄기차게 오를 땐 보이지 않던 꽃들이 보인다. 이게 태어나고 사십 년이 지나서야 나타난 것이다. 
이제 느리게 오르내린다. 주위에 무슨 꽃이 피었나 하면서 두리번거린다. 나에게 아무 쓰잘데기 없는 꽃들이 이제 진주 보배보다 더 가치 있게 된다. 쓰잘데기 없는 이야기를 붙어서 얻는 이익은 나중에 아무 쓸데가 없다. 지금 당장 가치가 없는 것들을 사랑하겠다. 


아니 지금 당장 가치가 있는데 보이지 않을 따름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풍경화일지라도 만인을 위한 풍경화는 아니다. 자기가 살아오면서 맺었던 인연들이 각각 다르고 느끼는 감정도 다르기 때문에 자기에 대한 온전한 그림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자기가 그리는 그림도 부분적으로 수정한다. 지금까지 오면서 지우고 싶은 그림도 있다. 그러나 전제적으로 보면 아름다운 풍경화다. 너무 가까이 보아서도 안 되고 너무 멀리 보아서도 안 된다. 적당한 거리에서 그림을 보아라. 세세하게 보이는 나의 단점을 가리고 너무 큰 산이 막혀 보지 못하는 세계를 보기 위해 적당한 거리에서 보자. 보는 위치에 따라 달라지는 풍경을 보면서 잠깐 머뭇거린다. 


물 위에 비치는 나의 모습이 어떤 내면의 뜻이 있나 하면서 머뭇거린다. 산수화를 그릴 때 방황을 바꿀 때 붓은 한참 머뭇거린다. 머뭇거린 시간은 내 생각이 투영되는 기간이다. 넓고 깊게 머무르는 곳에서 아름다운 소리와 풍경이 펼쳐진다. 해당화는 오월에 핀다. 


장미과인 해당화가 아름다운 것은 작고 귀엽다. 단 잎으로 단아하게 피어 수수한 마음을 자아낸다. 피기를 기다리는 동안 세월도 피는 곳으로 달려가고 있다. 
어느 골목 담장에 이르러 새롭게 인연을 맺을 수 있을까. 해당화 피는 모래밭에서 수평선을 바라보면서 너를 기다리는 기쁨이 푸른 바다가 되리니 마주치는 너의 빨간 입술이 기쁨보다 더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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