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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모래밭에 푸른 소나무 그곳에 학이 춤추고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4.02.02 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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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서 있을 한 자리만 있으면 묘목의 미약함에서도 압도적인 아웃풋이 가능함에 하루하루 군말 없이 거기서 할 수 있는 모든 성장을 창대하게 해버리는 게 나무의 능력.
봄여름가을겨울 시간의 자락 속에서 알게 모르게 세포 분열을 하며 하루의 어느 순간을 틈타 조금씩 명백히 커 나가는 식물계의 왕.


 그래서 나무를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 누워서 천년이라하지 않던가.
세상의 모든 큰 나무들을 스승으로 모셔야 할만큼 그들의 생명력은 경이로운데, 대개 마을의 큰 나무들은 입도조들의 입향목이다. 옛 선인들은 나무를 심어 나무가 잘 자라면 그곳이 복된 땅으로 여겨왔는데, 토테미즘의 영향이다.


또 해안가의 방품림과 북서풍을 막기 위해 군락을 조성한 곳은 살기를 막기 위한 비보 풍수의 영향으로 옛 전통들이다.
우리나라에는 옛 전통을 고이 간직한 채 아기자기한 아름다운 곳이 많지만 아시아 최초의 슬로시티 지역인 청산도 만큼 옛 정취가 많이 남아 있고 아름다운 곳도 드물다.


슬로시티 청산도에는 11코스의 슬로길이 만들어져 걷기를 좋아하는 관광객들이 사계절 찾는다. 


11개 코스는 코스마다 나름대로 각각의 특징이 있지만 그중에 10코스인 노을 길(지리마을에서 출발하여 청송해변과 고래지미를 지나는 길)은 지리마을 희락정(喜樂亭)에서 시작하는 길로 마을과 바다와 산을 통과하는 아기자기한 길로 조그마한 섬에서는 만나기 힘든 아주 아름다운 길이다. 


지리마을은 청산도에서 가장 큰 마을로 마을주변의 아름다움을 이야기 한 과룡명월(過龍明月), 오산숙무(烏山宿霧), 동곡백화(冬谷栢花), 장포어적(長浦魚笛), 항포귀범(港浦歸帆), 경구청연(鯨口淸煙), 모산반조(茅山返照), 청송학무(靑松鶴舞)등 지리 8경이 전해져오고 있다. 그 8경 중 2경이 청송해변 소나무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고 있다. 

 

 

 지리청송해변은 노을길의 중심에 있다. 지리마을 사람들은 이 해변의 아름다운 소나무 숲을 지리 8경 중 마지막경인 청송학무(靑松鶴舞)라 하였다. 


우리는 푸른 바다와 하얀 모래, 고결한 낙락장송이 어우러진 더 없이 아름다운 솔밭을 이야기 할 때 백사청송(白沙靑松)이란 표현을 한다. 
지리청송해변이 딱 맞는 말이다. 


그런데 이에 더해 학이 군무(群舞)를 춘다면 어떻게 그 아름다움을 더 표현하겠는가?


지리청송해변은 청산도의 대표적인 해수욕장이다, 마을의 촌로들에 의하면 이곳은 원래 소류지(沼溜地)였으나 바닷물과 강한 해풍으로 농경지가 자꾸 피해를 입자 250여년전 마을 사람들이 바닷물이 역류되지 않게 사구(砂丘)를 정비하고 해풍에 강한 소나무를 심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래서 소나무 뒤편으로는 아직도 갈대밭이 무성하게 형성되어 있다. 


250여년전 심었다는 폭 100여m, 길이 약 1km의 소나무 숲은 아름드리 해송 300여 그루가 잘 자라고 있다.      
오랜 세월 말할 수 없는 모진 풍상을 헤치고 살아남은 수백그루의 소나무 한그루 한그루가 다 예술품이지만 바닷가쪽 모진 해풍을 온몸으로 막아선 나무들의 뒤틀림은 더 심하고 흉고직경도 튼실하다. 


모래 위에 심어진 나무들은 스스로 자기 생명을 지키고 보호하지 않으면 안 되었기에 표피는 거북등처럼 갈라진 두툼한 장갑(裝甲)을 입었고 뿌리는 한방울의 물이라도 섭취하기 위해 또 여름철 태풍으로부터 넘어지지 않게 사방팔방으로 뻗쳤다. 


수백년의 세월이 흘러 하얀 모래위에 얽히고설킨 그 뿌리마져 지금은 하나의 설치 예술품으로 빛난다.        


청송해변은 또한 예로부터 일몰이 아름다운 해변으로 지리마을에 내려오는 지리 8경 중 제 7경인 모산반조(茅山返照 수평선에 떠 있는 모도로 넘어가는 해)의 무대이기도 하다. 해가 질 무렵 멀리 수평선에 떠 있는 모도(茅島)로 떨어지는 해는 붉다 못해 바다를 검게 만들고 하늘은 푸른빛을 더 푸르게 물들여 금방이라도 쪽빛 물감이 뚝뚝 떨어질 듯 선명하다. 


이렇게 아름다운 지리청송 숲도 최근 들어 위기에 처해있다. 차량이 급증하면서 너도나도 숲 속으로 차를 가지고 다니기 때문이다. 
여름철 피서가 시작되면 전국에서 찾아오는 피서객들이 차량을 가지고 캠핑을 하고 있다. 
숲은 파괴되면 복구하는데 수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말 못하는 소나무들이 더 이상 인간의 욕심과 이기심에 희생되지 않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    

 

유영인  다도해해양문화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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