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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할 것도 없는 이 맛을, 천하에 몇이나 알까?

  • 김형진 기자 94332564@hanmail.net
  • 입력 2024.02.23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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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워요”
우와! 기척도 안했는데...
만지면 느낀다?
아니, 꼭 만져야만 알 수 있나요?
당신의 눈빛이 지금 날, 
어루만지고 있자나요!
저절로 부끄러워진거죠
손으로 만졌다면야
꽃잎의 뼈가 으스러졌겠지만,

첫시선의 놀라움이 속으로 타올라 
숨도 제대로 쉴 수 없는데
태양빛을 뚫고 뿜어대는 
안광의 풀무질이 
봄의 불꽃으로 타올라
미칠 것 같은 이 느낌이 
봄의 촉감이예요

봄의 촉감은 당신이 나를 통과할 때
반짝이던 별빛으로
고동치던 그리움의 혈관을 가로질러
깃털없는 겨울밤을 건너왔어요

생명의 바람을 일으킨 
촉감의 복종에 따라
몸과 마음이  저절로 불타올라
봄의 입술에 닿는 순간,
나비가 나타날 거예요

그러니, 찍지마세요! 
날 책임질 거, 아니라면.

# 매화의초상권  

 

군말> 
본래 이번호엔, 아시안컵 축구에서 형들한테 대들다가 전세계인의 공분을 사고 있는 이강인, 최근 손흥민에게 사과하며 더 큰 성장을 보여줄 것 같은데. 
완도의 이강인이라 불리는 김찬희 완도군의회 비서실장의 축구 스승인 완도의 손흥민, 백창국 금일읍 총무팀장의 도움을 받아 지속가능한 개발에서 지속가능한 번영의 말을 듣고자 금일읍 번영회장을 소개할까 했지만 신임 김용식 금일읍장과 함께 금일읍정에 총력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 말에. 


그래서 앞으로 군정 주요화두는 해양치유에서 해양바이오로 방향이 선회될 것으로 보여 군청 박현정 해양바이오 팀장의 도움을 청해 노화 출신의 해양바이오 박사를 소개할 예정이었지만 공교롭게도 외지 출타. 


그래서 다시, 지역사회에서 모범적인 기부로 칭찬이 자자한 고금면 청년회장 부부를 소개할 예정이었지만 이번주엔 어렵다는 의사 표명. 


부득이 봄날 같은 날씨가 이어져 봄의 장을 열어보기로 편집 방향을 잡았다. 
봄하면 매화이고 매화하면 꽃 중의 꽃, 매화는 그냥저냥 길거리를 지나다 우연히 핀 것을 보는 게 아닌 나와 인연을 맺은 매화나무의 꽃잎이 필 때까지 몇 번이고 찾아가 만나는 것인데, 이번엔 가지 못하고, 대신 위대한 님이 신흥사에 핀 홍매화을 담아 보내줬다. 
매화하면 천원짜리 지폐에 퇴계 이황의 배경이 될만큼 연인 두향과 이야기가 백미, 둘의 인연과 그들이 남긴 시(詩)를 개필해 소개하기로 한다. 

 

 

두향과 퇴계, 첫만남. 
늦은 밤 매화에게 건네는 눈길이 어쩌면 빈 방에 초연히 앉아 누렇게 바랜 옛책에서 옛성현을 대하는 고고한 선비같을까?
그럼에도 선비는 몇 생애를 더 닦아야 너처럼 될까?하며 학문에 매진한다.
저 모습이 대학문으로 불리는 퇴계의 理였던가! 고요하면서 고요함이 없고 지극히 허하면서 지극히 실하며 무엇도 없되 모든 게 다 있는 두향의 밤이었다. 


천지 간 고요하고 모든 꽃잎이 잠들었는데, 어디서 또 꽃이 피었는가! 매화꽃 피던 밤, 동짓날 밤 소복하게 내린 눈을 떠올리는 듯 그때 내린 눈이 나뭇가지에서 아직까지 녹지 않았냐는 듯 이 밤, 그녀의 눈동자가 일렁인다. 너의 말을 알아 듣게 됐을 때 그것이 마지막이었구나! 
늦게 핀 매화의 참뜻을 새삼 알겠네. 추위에 약한 걸 알아서 가련하구나! 


이 밤, 내 병이 나을 수만 있다면... 밤이 새도록 널 보고서야 내 전생은 밝은 달이었다는 것을. 퇴계는 매화가 핀 줄 착각하고 있었다. 아득한 달빛 속에 그윽한 매화향기처럼그믐밤을 갈아 넣은 먹빛 같은 그리움에 청징한 바람소리 담긴 연적, 꽃잎의 붓끝에 향기롭게 휘날리는 두향의 고아한 자태라!


특별할 것도 없는 이 맛을, 천하에 몇이나 알까?
손을 뻗으면 금새라도 닿을 것은 가녀린 어깨, 그 이름을 부르면 금방이라도 뒤돌아 볼 것 같은 청안, 그 가깝고도 머나 먼 사이에 달빛처럼 떨리는 당신이란 꽃잎. 그 안으로 들어갈 때면 사랑한단 한마디만큼은 이 생이 끝나도 온전히 남을 것이다.


이 밤으로 옛날을 살아 눈을 감고 고운 거문고 줄을 골라 양 가락에 맞춰 하얀 손 버들잎으로 휘날리니, 굽이치는 산맥 위로 보랏빛 하늘이 열리고 출렁이는 파도 위로 찬란한 태양이 솟듯 그렇게 열리고 그렇게 떠오르는 순간에.


아~ 꿈이시여! 
마주 앉은 거문고의 줄이 끊겨 버렸네.
“님께서 슬퍼하시기에 이별인 줄 알았습니다. 이별이 서러워 술잔을 들어 얼굴을 가리운 채 슬피 울었답니다”


“님께서 가시면 꽃 피고 새 우는 봄날은 어이할까요? 떨어지는 꽃잎에 입 맞추고 봄 햇살 한 움큼을 손에 쥐고서 펴고 나면, 이제 제겐 빈 햇살 뿐인 걸요”
“사랑하기도 어렵지만 이별은 더욱 어려울 것이라 덜컥 겁이 납니다”
“죽어 이별은 소리조차 없겠지만 살아 있는 이별의 슬픔은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까요. 이젠 기다려도 오지 않으니 당신 같은 봄날, 제게 다시 올까요?”


“슬퍼마오! 지금 이 순간의 내가 그 때 그 순간의 당신을 바라보게 될 때면 뜰안엔 한 떨기 매화가 필 것이니, 나는, 나는... 당신으로 볼 것이요”
열여섯 꽃다운 나이에 48세의 퇴계를 만나 열 달도 지나지 않아 헤어져 69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21년간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어느 날 인편에 난초를 보냈더니, 님께선 속병에 좋은 용한 샘물로 화답했다.
님의 마음이라 님의 건강을 기원하는 정화수로 사용했다. 하루는 정화수가 핏빛으로 변하기에 그 길로 4일을 걸어 도산서원으로 향했다. 단정한 소복 차림으로 영전에 제향, 돌아올 때 님께서 남긴 마지막 말을 들었다. 


작별의 시간, 님에게 고이 건넸던 매화를 바라보며, “어~서, 매화에 물 줘라”
이(理)의 기(氣)의 도(道)를 논하던 거북바위, 그곳에 올라 거문고를 타며 애절하게 부르는 초혼가.  


“나 죽거든 강가 거북바위에 묻어다오”
그리고 남한강에 몸을 날렸다. 


훗날에 이광려가, 

외로운 무덤 하나 강가에 있어
모래밭엔 붉은매화 홀로 피었네
두향의 이름 사라질 때
그때가 되면 그때가 되면,
거북바위도 사라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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