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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눈동자는 아름다움을 잊지 않았습니다

주민과 함께 일궈가는 마을공동체 김해덕 완도읍 주도마을 이장 1편

  • 김형진 기자 94332564@hanmail.net
  • 입력 2024.03.08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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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변화를 쫓는 사람들은 비단 기상학자들만이 아니다. 시인과 화가, 사진가, 음악가 등 많은 예술가들이 기상학자 이상으로 자연의 변화를 감지하는데, 대표적인 예술가가 빛의 화가 모네다. 

 

카페 248에 들어서자, 모네의 그림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의 대표작은 수련이지만 개인적으로는 많이들 ‘양산을 든 여인’으로 알고 있는 ‘산책’.


양산으로 가렸지만 온화한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얼굴, 입안에 넣으면 살살살 녹아내릴 솜사탕같은 감미로운 구름에, 목덜미를 간지럽히고 내달리는 산들바람하며, 싱그러운 풀 냄새와 어우러진 대지의 향기가 온몸을 휘감고 돈다.


이것은 빛, 우리가 빛이라면, 이 빛이 사라져 사랑하는 당신이 보이지 않는다면 천사는 모두 사라진 것이다.


이 빛 속에서 천사를 볼 수 없다면 사랑하는 당신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


이 빛 안에서 당신은 보이지 않는 천사를 닮았고, 천사는 보이지 않는 당신을 닮았다. 보이면서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은 빛이었다.


양산을 바쳐든 자태가 수정처럼 빛나는 여인, 바로 모네의 아내이자 뮤즈인 카미유다. 사랑의 모든 순간들을 품은 언덕 위를 함께 걸었을 때, 모네의 목구멍은 따가울만큼 울컥거렸다. 


이 순간을 위해 살아왔고, 이 순간 외의 더 이상의 순간은 없었다. 보면볼수록 격동하는 그리움이 모든 혈관에서 솟구쳐 올라, 붓을 들지 않으면 죽을 것만 같았다. 
그림 한 점을 휘리릭, ‘산책’이라 제목을 달았지만, 나즈막히 내뱉는 말은 ‘내 앞에 천사가 나타났다!’ 


그런 그녀가 고작 서른두 살에 생을 다했다. 까끌까끌한 볼을 타고서 흘러내리는 눈물이 파레트에 쉼없이 떨어졌고 쥐어짜듯 물감을 풀어내 캔버스 위에 광기 어린 붓질을 이어나갔다. 


그녀를 추모하기 위해 찾아 온 친구의 눈엔 이미 혼이 나가 버린 모네.
“어떻게…. 죽은 아내를 두고 또 그놈의 그림 타령인가!” 
당장에 모네의 붓을 낚아채 부러뜨릴 기세로 달려들자, 모네는 한없이 슬픈 표정으로 애원하듯 “제발, 제발... 그냥 놔 두게” 


“이제, 그녀에게 해 줄 것은 이것뿐이라네. 마지막으로 정말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더 그녀를 그려주고 싶어”


당신보다 아름다운 말이 없어 그립니다.


말을 잊어버렸으나 눈동자의 아름다움을 잊지 않는다. 뼈를 깎는 아픔과 고통을 집어삼켜 이를 정화하고 승화시켜 다시 세상의 찬란한 빛으로 내놓는 사람. 


존재의 중심 가장 깊은 실체 속으로 한 발 한 발 걸어들어간 사람. 그는 빛.

 

 

모네의 그림으로 인테리어를 꾸몄다는 것은 높은 의식이다. 곳곳에 화분과 인테리어의 절묘한 배치, 예술적 품성이 돋보였다.
김해덕 완도읍 주도마을 이장. 천주교 세례명은 임이데레사. 바다 해(海)와 큰 덕(德)을 한자로 쓴다고 했다.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예술의 경지를 구현한다는 건, 너를 구원해야만이 내가 구원받는 일이라서.
완도읍 주도 마을은 2023년 청정전남 으뜸마을 만들기’ 사업 평가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전남도가 도내 22개 시·군의 3000여 개 마을을 대상으로 깨끗하고 아름다운 마을 만들기를 위해 추진한 사업, 주민 참여도, 우수 마을 선정 건수, 추진단 운영 실적, 홍보 실적, 수범 사례 등의 항목을 평가해 우수 으뜸마을 75개소를 선정했는데, 주도마을 1960∼70년대 수산물 수출이 호황을 이루던 시절 강아지도 500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녔다던 과거 문화를 재조명했다.


사실, 주도마을은 완도군의 상징. 각 시군마다 가장 큰 마을이 하나씩 있는데, 사랑의 하트 모양을 닮은 ‘주도’는 완도의 역사와 정통성을 가진 랜드마크다. 완도의 문화예술과 관광의 시발점이 이곳에서 이뤄져야 한다. 
김해덕 이장은 “주도 마을은 완도에서 가장 큰 마을입니다. 그래서인지 첫 이장 회의를 가는데 웬지 가슴이 두근거리더라구요”


“완도읍의 상징이자, 개도 오백원짜리를 물고 다닌다는 말이 나돌만큼 완도경제의 큰 버팀목이었는데 아쉽습니다”
그러며 마을 지도를 보여줬다. 완도하숙 나폴리다방 주도방앗간 해안선구점 등등.
“주도가 살아나야 완도군 전체가 살아날 수 있는데, 여러 정책들이 더디다”고 했다.


주민이 주체가 되어 마을에 필요한 사업을 함께 조사, 논의, 계획, 실행해서 우리 마을을 더 살기좋게 만들어가는 활동을 펼치는 건강한 마을 공동체를 꿈꾸는 것 같았다. 부녀회와 노인회의 이야기가  끊이질 않는다.

 

김 이장은 “우리가 고민해야 할 일은 주위의 시선과 판단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진짜로 원하는 방향이지 않을까요?”
 “우리 주민이 주변인이나 관찰자가 아닌 주인공으로 살았어야 한다. 우리 주민이 주인공으로 살기 위해 내면의 용기를 가지고 대담하게 나서야 했다”고.


김 이장은 주도리 마을에서 태어나 학창시절을 완도에서 보내고 목포 세무서에서 잠깐 근무한 후 완도군 수협에서 근무했으며, 자신의 집에서 길 건너편에 있던 남편을 만나 지금까지 살고 있다고 했다. 


“1960년대에서 1999년대 주도리마을(우리군내리4구)은 경제부흥과 상권에중심지였으나 시대가 변해 구도심 속에서 주민들은 노령화되면서 희망이 사라져 가는 것이 아쉽다”고. 했다. 또 “이장으로써 으뜸마을을 만들고 싶었는데 경제부흥의 테마를 생각하게 되었고, 개도 500환권(지금의5만원권정도)을 물고 다닌 시절을 살리고 싶어 개동상을 세우게 되었다”고.


“시작은 여성 상사업비로 생각했는데, 작은 돈으로는 할 수가 없어 군의원님과 개발위원님들, 부녀회원님 여러분들의 성원으로  개동상을 세우고 마을 군데군데 쉴 수 있는 작은 벤치와   화분조성을 조성해 환하게 꽃피는 우리 마을을 염원했습니다”
어떻게 이리 큰 마을의 이장이 되었냐고 묻자, 김 이장은 남편 대신 이장을 하게됐다고 했다.


본래 주도 마을 이장은 남편이 하고 있었는데, 남편이 갑자기 뇌혈관질환으로 쓰러졌는데, 그때가 가장 힘든 시간이었다고 했다고.


남편의 이름을 묻자, 완도군 체육회 사무국장을 역임한 김형배 전 이장. 
“쓰러졌을 때, 완도 집에서 119로 광주 조대병원을 찾았는데, 의사가 수술을 해도 장담할 수 없다는 말에 서울 분당 병원으로 가게 됐어요”


“생과 사의 길목에 서보니, 정말 아찔하더군요. 경험자들은 뺑뺑 돌지 말고, 요양원으로 가라고 했는데, 어디 사람이 그런가요! 할 수 있는 것은 다하고 왔지요”
그렇게 몇 개월째 이장이 공석이 되다보니 주민들이 불편을 호소하기 시작했고, “그러면, 너가 해라”했단다.


나이를 묻자, 김해덕 이장은 “최정욱 의원하고 친구예요” 
‘에엥! 아직 50대 중후반으로 밖에 안보이는데’ 사실인지 최정욱 의원에게 전화를 걸자...(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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