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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워라, 3월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4.03.15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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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쌤, 정년퇴임 축하드려요!”
  “에공, 세월 따라 흐르다 세월에 밀려 물러나는데, 무슨 축하할 일이라고…. 부끄럽네요.”


후배 선생님들 문자에 의연하게 답을 했지만, 돌아보니 여기저기 몸이 아픈 중에도 이 나이까지 살아있음이, 도중에 학교를 그만두지 않고(못하고) 마지막까지 국어수업 하는 교사로 살아왔음이 조금은 대견한 듯도 하다. 


정년이든 퇴임이든 별일 아니라는 듯 무심히, 생의 다음 장을 일상으로 이어가기 위해, 의례적인 퇴임식과 33년 이상 근무한 공무원에게 직위에 따라 준다는 정부의 훈장은 사양했다. 그 이유가 네 가지쯤 있지만 여기서는 밝히지 않는다. 대신 오랜 세월 내가 만난 아이들에게 실수는 하지 않았는지, 마음에 상처나 주지 않았는지, 곰곰이 성찰하며 홀로 고요히 퇴임 의식을 했다.


3월, 드디어 자유인 자연인이 되었다. 전과 달라진 것 중 하나는 이제 이런 것을 안 해도 된다는 점이다. 
아니, 이런 일을 하면 안 된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청소년 신간 도서 검색하기, 영화 연극 음악회 등 공연 소식 확인하고 참가희망자 모집하기, 지역 화가들의 작품 전시회 일정 알아보기, 도서관과 독립서점 어디선가 작가초청 북토크나 인문 강좌가 열리는지 알아보고 참가자 모집하기 등이다. 


이제는 아이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온전히 내가 원하고 내게 필요한 자리를 찾아 혼자 가서 즐기면 되는 것이다. 처음엔 다소 허전하고 아쉽고 아까운 마음이 들 수도 있겠지만 금세 익숙해 지리라. 곳곳에서 예술공연과 전시, 인문 강좌가 얼마나 많이 열릴지 미리부터 가슴이 뛴다.


오전 10시 즈음 한적한 동네 도서관에서 두어 시간 동안 소설을 읽고, 오후에는 그간 소원했던 지인들을 만나 카페에서 차를 마셔야지. 해 질 녘에는 FM 라디오 음악프로그램을 들으며 집 부근 호수공원을 한 바퀴 걸어야지. 번잡한 주말이 아닌 주중 하루는 가까운 곳으로 가벼운 여행을 가야지. 항구가 있는 바닷가 소도시라면 더 좋겠지. 2월에 작성한 나의 미래계획서는 무지갯빛으로 화려하고 오로라처럼 신비로웠다. 그런데 뜻밖에….


일이 생겼다. 이게 그 말로만 듣던 재취업일까. 바로 사람들이 그것만은 하지 말라고 서로 말리는 일, 손주 돌보기다. 
손주는 딸의 아들이다. 딸은 지난 3년간 육아휴직을 해서 소위 ‘가정 보육’을 고수해 왔는데, 복직해야 하는 시점이 된 것이다. 딸은 그동안 매우 힘들어했다. 


0.7명만 낳아야 하는데 1명을 낳아버렸다고, 이런 과정을 미리 알았더라면 과연 아기 사람을 낳았을지 모르겠다고, 말도 안 되는 하소연을 하곤 했다. 그러니 외할머니인 내가 때맞춰 자유인이 된 마당에 도와주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어쩌면 그것은 핑계인지도 모른다. 보들보들하고 말랑말랑한 녀석을 휴대폰 영상이 아닌 실물로 매일 가까이에서 보고 싶은 마음이 아주 없다고는 할 수 없을 터였다. 


그리하여 나는 집을 떠나 멀리 북쪽 경기도 낯선 곳에 와서 녀석을 돌보고 있다. 녀석은 지금 우리말에 각종 조사와 부사를 넣어서 거의 완벽하게 구사하고, 특히 ‘싫어요’라는 부정문 발화에 재미를 들인 (미운) 네 살이다. 


세상 모든 일에 ‘왜?’라고 물으면 자판기처럼 답이 나오는 줄 알고, 본질적인 질문을 무차별로 던져서 나를 철학자로 만든다. 행동 발달 단계는 집안 수납장 안에 깊이 넣어둔 모든 물건을 꺼내 만져보고 던져보며 호기심을 푸는 중이다. 가느다란 팔과 작은 손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불가사의다. 


낮에는 잠깐 놀이학원에 보낸다.(나의 자유시간이다.^^) 등·하원 시 처음 며칠은 유아차에 태우고 다녔는데, 녀석이 포대기를 가져오더니 업어 달라고 한다. 아이를 등에 업고 큰길에 나가면 유아차에 아기를 태워서 밀고 가는 젊은 엄마들이 많이 보인다. 


계획적으로 개발하고 있는 신도시라 고층 아파트 단지마다 상가 건물에 학원과 어린이집 유치원이 많이 모여있다. 유치원 셔틀버스들도 분주히 운행한다. 
노란 미니버스에서 내리는 아기들을 보며 문득 뭉클해진다. 저 아이들이 모두 손주와 함께 살아갈 친구들이구나. 부디 다정하고 우아하고 훌륭하게 자라서 내 손주랑 어울려 잘 살아가렴. 지금보다는 더 포근하고 합리적이고 서로 돕고 사랑하는 우리나라를 만들어서 아름답게 살아가렴. 


먼저 퇴임해서 여유롭게 지내는 선배 샘이 안부 문자를 보내왔다. 
“새봄이 와서 꽃구경도 다니고, 여행도 다니고 그래야 하는데 여전히 바쁜 몸이네.” 
나의 대답은 이렇다.


“네. 손주가 꽃이에요. 가끔 둘이 씨름을 해야 해서 좀 힘들긴 하지만요.”
사실이다. 손주는 꽃이다. 매일 다르게 피어나는 꽃봉오리다. 따로 꽃 구경을 갈 필요가 없다. 무슨 꽃이 있어 이 몽글몽글한 사람꽃보다 예쁠까.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노래도 있지 않은가. 


나와는 육십갑자를 한 바퀴 돌고 같은 띠인 녀석과 눈을 맞추며 말한다.

 

 


  “네가 꽃봉오리다”
  “아니야, 나는 어린이야.”
  네 살 아기사람의 대답이다.

 

강정희   전 국어교사
著 다정한 교실에서 20,000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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