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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지정 문화재의 운명, ‘왕바위’ 전설 이대로 묻힐 것인가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4.03.15 08:49
  • 수정 2024.03.27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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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그렇지, 이쯤해서 나와 줘야 맞는 것인데...” 


역사 학계에서 아직 밝혀내지 않은 완도만의 고대해양사인 선사유적 취재 과정에서 허공을 향해 주문처럼 외쳤던 존재의 실체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완도읍 중도저수지를 지나서 150kV 완도변환소 토건공사 시행중인 도암마을에는 청동기시대를 상징하는 고인돌 군락으로 추정된 바윗돌들이 들판이나 하천 주변에 가득 널려있다.


게다가 숲속에는 고인돌을 세우기 위해 채석한 것으로 추정되는 바위 군락, 주민들이 집터를 선택한 과정에서 쏟아져 나온 돌덩이로 석축을 쌓은 흔적까지, 선사시대 고인돌 유적으로 추정되는 상당량의 돌무더기를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 8일 지인을 만나려고 마을로 들어서는 순간, 심상치 않은 바위들의 모습이 눈 안에 들어왔다. 20여 년 동안 주변에 있는 인류의 시원에 관한 주제로 작품 활동을 계획한 나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한 풍경이었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마을 주민들을 상대로 탐문조사했다. 

 

아니나 다를까, 도암마을 주민들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것이 선사시대 유적이라는 것을 알기 보다는, 조상대대로  바위들을 신성시했다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저기 보이는 큰 바위가 왕바위예요” 주민 김씨가 취재진의 질문에 말을 이어갔다. 


“어린 시절 마을 어른들이 밭에서 농사일을 하다가 휴식시간 때 그늘을 찾아서 왕바위에 앉아 새참을 먹곤 했다는 것, 그곳이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였다는 것, 저수지가 없었을 때는 마을까지 바닷물이 밀려들어 왔다는 것, 중도리에서 정도리까지 간척지가 된 곳에는 비슷한 바위가 수없이 널려있었다는 것, 간척사업을 하면서 그 많던 바윗돌이 불도저에 밀려 땅속으로 묻혔다는 것, 그리고 숲속에는 아직 조사되지 않은 무수한 바위들이 있다”는 것 등이다. 

중도저수지 상류 고인돌로 추정되는 바위의 하부가 드러난 싱태다.
중도저수지 상류 고인돌로 추정되는 바위의 하부가 드러난 싱태다.

 

도암마을 산속에는 바위 군락이 있는데, 바위들이 노출되면 마을에 흉한 일이 생겨서 조상 때부터 그것들이 드러나지 않게 하려고 산에 있는 나무를 베지 않고 감춰놓는 풍습이 전해지고 있다.


최근 한 건설업체가 하천공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밭에 있는 바위를 옮기자고 밭주인을 찾아와 사정사정했다. 그러나 마을에 큰 일이 발생할 것을 염려한 밭주인은 "죽어도 바위를 건드릴 수 없다"며 엄포를 놓았다고 한다. 
저수지 상류에도 고인돌로 추정되는 바위가 수면위로 드러나 있다. 하천공사 일부를 완료한 주변 밭에는 고인돌 형태를 지닌 서너 개의 바위가 있는데, 그 밑에는 도굴한 흔적까지 역력하다. 


여느 지역이나 마찬가지로 비지정문화재는 그렇게 대책 없이 사라지고 있는 것. 이것이 현재 우리나라 비지정문화재의 운명이다.


선사시대 고인돌로 추정되는 바위와 관련해서 도암마을에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전한다. 지금 공사가 거의 마무리 되고 있는 한전 변환소에서 부터 마을을 가로지르는 하천상류는 이곳 사람들에게 일명, ‘터가 쎈 곳’이다. 그곳에 집을 짓고 살았던 사람들은 얼마 못가서 죽어나가거나, 정원을 꾸미려고 그곳에 있는 바위를 채집해 간 사람들은 모두 우환이 생겼다. 그 말을 전해 듣고 사람들은 언감생심 마을의 수목이나 바위들을 건드릴 생각도 못한다고 한다. 


그 말을 증명하듯 하천 주변에는 폐허가 된 건축물 흔적이 뚜렷하다. 도암마을에 전해오는 괴담의 정체는 무엇일까? 대대로 신성시 여긴 바위들을 지켜내기 위한 조상들의 혜안이 담긴 것은 아닐까?


선사유적과 관련해 본보에서는 지난 2022년 1월부터 '완도군의 마한시대 연구가 시급하다'는 내용을 골자로 1면 보도한 후, 지속적으로 고대해상왕국을 이룬 완도만의 ‘고대해양사’와 섬 지역에 분포된 ‘마한문화에 관한 연구의 필요성’을 주장해 왔다.


현재, 해남과 강진, 그리고 부안군에서는 고려청자 요지의 세계문화유산 등재신청에 이어 전남지역 마한문화권에 관한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 움직임이 본격화됐다. 경남 김해의 대성동 고분군과 함안, 창녕, 고성, 합천, 남원 등 가야문명을 대표하는 7개 고분군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자 전남지역의 마한문화권 유네스코 등재 움직임이 더욱 가시화된 것. 


지난해 11월 전남문화재연구소와 전라남도는 ‘마한역사문화권 주요 성과 및 발전방향’을 주제로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기반 마련을 위한 국제학술대회를 신안군에서 열었다.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연구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마련했다. 
앞서, 지난 2019년 12월 전남지역 마한문화권 유네스코 등재를 위해 목포, 나주, 담양, 해남, 화순, 영암, 무안, 함평, 영광, 장성, 신안 등 11개 시·군이 마한문화권 공동발전 협약을 체결했다. 


마한역사는 그동안 나주와 영암지역에 분포된 고분을 중심으로 연구가 진행돼 왔다. 
그러다가 최근에는 마한시대 호남 대표 유적지이자 해상도시라고 주장하는 해남군의 송지면 군곡리 패총지 발굴조사가 진행되면서 해남군도 마한사의 관심도가 커졌다. 이유는 마한의 마지막 제국이 해남에 있었을 것이란 추정 때문이다. 


해남군은 송지면 군곡리 패총지 연속 발굴에 이어 현산면, 계곡면, 북일면 일대에서 고분과 주거지 발굴 등 마한사 복원에 힘쓰고 있는 상황에서 완도군이 지난 2005년 선사시대 유적 일부만 발굴한 이후, 다른 어떤 연구도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은 완도만의 해양문화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보면 참으로 암담한 현실이다. 

 

저수지 상류의 밭과 숲속에는 고인돌로 추정되는 바위군락이 있다. 숲속에 드러난 바위가 마을 사람들이 부르는 '왕바위'이다.
저수지 상류의 밭과 숲속에는 고인돌로 추정되는 바위군락이 있다. 숲속에 드러난 바위가 마을 사람들이 부르는 '왕바위'이다.
도암마을을 가로지르는 하천 주변에는 채석장으로 추정되는 바위의 흔적들이 보인다.
도암마을을 가로지르는 하천 주변에는 채석장으로 추정되는 바위의 흔적들이 보인다.

 

‘장보고의 해상왕국’이라며 의기양양하던 완도군만 유네스코 등재를 위한 마한문화권에서 쏙 빠져있다는 것은 그동안 지역의 문화유산에 무관심으로 일관했던 완도군의 큰 실책이라는 점이 분명하다. 

 

고대해양문화가 장보고시대로만 국한되어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 온 것도 문제다. 장보고에 관한 학술연구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상황에서 삼국사기의 내용에 따른 장보고의 태생에 관한 기록도 너무 부실하다 못해 진부할 뿐이다. 고려 중기 때 김부식이 기록한 삼국사기의 몇 줄 기록에 의해 붙여진 신라시대 인물 장보고는 철저히 폄하됐다. 


픽션과 논픽션을 가미한 최인호의 소설 <해신>에 나온 대하드라마 내용으로만 장보고의 모든 것을 만들어 낸 완도군의 관광 상품 역시 의구심을 증폭시키고 있다. 까딱 방심하다가는 완도군이 주장하는 장보고에 관한 학설을 뒤집어버릴 수도 있는 위협적인 요소까지 안고 있는 실정이다.

 

마한사를 꾸준히 연재하고 있는 타 지역의 한 주간지에서는 "장보고보다도 훨씬 앞선 해상왕국이 자신들이 살고 있는 지역에 존재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흥분을 감추지 못하겠다"며 은근슬쩍 완도군의 현재 상황을 조롱까지 한다. 


장보고시대로만 국한된 부실하기 짝이 없는 고대해양문화 연구, 어떻게 할 것인가. 왕바위의 전설이 전해오는 도암마을은 완도군의 고대해양사 연구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수 있을까.

 


정지승 문화예술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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