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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 군수는 이름을 버림으로써 역사에 이름을 남긴 연암을 배워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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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상
등록일
2013-07-10 15:08:10
조회수
10717
** 최근 지역사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청산도 서편제공원에 세워진 현직 군수의 흉상과 관련한 조선일보의 대표적 칼럼인 '만물상'의 7월 5일자 보도 내용입니다.


[만물상] 군수의 흉상(胸像)

문경새재 첫째 관문에 들어서 고갯마루를 향하다 보면 오른쪽에 큰 비석이 스무 개 남짓 늘어서 있다. 조선시대 이 지역을 다스렸던 수령들을 기리는 송덕비(頌德碑)다. 오랜 세월 비바람 탓인지 이름 석 자도 알아보기 힘들다. 이끼도 두껍게 끼었다. 오가는 등산객은 눈길도 주지 않고 제 갈 길을 갈 뿐이다. 이것들도 처음 세웠을 땐 광채를 내며 비석 주인을 자랑스럽게 했을 것이다.

▶옛말에 "정말로 잘난 사람은 이름을 잊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이름을 세운다"고 했다. 이름을 날린다는 게 얼마나 헛된 것인지 아는 진짜 잘난 사람이 많았다면 이런 말도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이름을 후세에 전하고 싶은 것은 사람의 본능에 가깝다. 그래서 중국의 일여라는 고승은 인간이 물리쳐야 할 다섯 가지 욕심(五慾)으로 재(財) 색(色) 식(食) 잠(眠)과 함께 이름(名)을 들었다.



▶연암 박지원이 현감으로 안의(安義)를 다스렸을 때 백성들은 수령의 존재도 잊고 생업에 전념할 수 있었다. 그가 떠나는 날 백성들이 따라와 눈물을 흘리며 송덕비를 세우겠다고 했다. 연암은 "그것은 내 뜻이 아니다. 송덕비를 세운다면 그 비를 땅에 묻겠다"고 끝내 사양했다. 그러나 조선시대 수령 대부분은 이름을 새기는 쪽을 택했다. 그중엔 교활한 향리(鄕吏)를 시켜 재임 중에 송덕비를 세우게 하는 경우도 많았다. 백성들은 사또를 치켜세우는 비석 세울 돈 입비전(立碑錢)을 마련하느라 등골이 또 휘었다. 그들은 사또가 떠난 뒤 송덕비를 깨버리는 것으로 속을 풀었다.

▶엊그제 전남 완도군 청산도에서 현직 완도 군수의 흉상이 제막됐다. 흉상 옆 돌에는 "완도를 국민이 가장 가보고 싶은 지역으로 탈바꿈시킨 군수의 열정과 헌신은 우리 가슴 속에 영원히 기록될 것"이라고 새겼다. 군수는 제막식에 가 자기 흉상을 덮고 있던 흰 천을 직접 걷어냈다. 비용은 청산농협이 낸 2000만원과 주민 1016명이 자발적으로 한 사람당 1만원부터 100만원까지 낸 돈을 모아 댔다고 한다.

▶부산 해운대 옆 달맞이길은 일출과 월출을 한곳에서 즐길 수 있는 명소다. 거기에 1997년 해월정(海月亭)이라는 정자가 들어섰다. 당시 해운대구청장이 해월정을 뜻풀이한 글을 현판에 쓰고 자기 이름을 새겨 넣었다. 그런데 누군가 현판에서 구청장 이름을 도려내버려 자국이 보기 흉하게 남아 있다. 완도 군수가 청산도를 살렸고 주민들은 그런 군수가 고마웠을 수 있다. 그러나 완도 군수는 이름을 버림으로써 역사에 이름을 남긴 연암을 배워야 했다.
작성일:2013-07-10 15:08:10 211.253.124.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