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한 때 산업화과정에 서민들이 공무원에게 특혜를 받기위해 후진국형 ‘와이로(わいろ)’와 ‘사바사바(サバサバ,)라는 말이 유행하던 적이 있다. 무슨 일이든 공무원을 상대하려면 이 ’와이로‘와 ’사바사바‘의 기름칠을 하지 않으면 일이 잘 돌아가지를 못했던 시절 얘기다. 이 와이로는 회뢰(賄賂) 또는 뇌물(賂物)의 일본어 발음이다.‘사바사바’는 이 어휘가 일본어의 サバサバ(사바사바)에서 온 것이라고 한다. 사바는 정어리(鯖)를 뜻하는 것으로 정어리를 누구에게 뇌물로 준다는 뜻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국어사전에는‘사바사바’가
장흥땅에서 일어난동학도의 기세는 차라리 노도였다.그 파도가 무서웠던 정권이보성으로 뚝 떼어 보성군 웅치면이 되었던그 땅에서 태를 묻더니유신잔당 장례식을 치르던 뚝심으로이름이나 팔아먹는 보성차밭을 곁에 두고도바짓단 걷고 무논에 들어가 논을 매거나,종자조차도 없어져 가던 우리 밀만 붙잡고살아 온 농민 백남기.2015년 민중 총 궐기대회에서이미 썩어버린 사대강에나 뿌려야할물대포에 직격당해꽃처럼 드러누웠다.무너져 내렸다.꽃부터 꽃대까지피어올랐던 자취도 없이 시커멓게말라가는 상사화처럼,자식 먼저 보낸 어미 가슴마냥말라버린 그대로 우리도 주저
백남기 농민은 지난해 11월 열린 민중총궐기 집회에 참석해 경찰이 쏜 엄청난 충격의 물대포를 지근거리에서 맞고 뇌진탕, 뇌출혈에 코뼈 골절 및 시신경 손상으로 그동안 중태에 빠져 사경을 헤매왔다. 쌀값 보장과 밥쌀 수입 중단을 호소하며 아스팔트에 섰던 백남기 농민이 317일간 사경을 헤매다 지난 9월 25일 14시 15분 선종하셨다.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시위 참가자에게 자행된 국가권력의 무자비하고 무원칙적 폭력행위로 인한 그의 죽음은 사고 발생이후 정부와 국가권력기관이 보여준 무책임함과 부도덕 때문에 억울함과 분노를 가중시킨다.시
편집자 주> 완도신문에서는 보도의 정확성과 공정성을 바탕으로 언론보도의 신뢰를 쌓고 독자의 권익보호를 위해 독자위원회를 설치 운영함에 따라 창간 26주년을 맞아 독자위원들의 목소리를 청취했다.1. 완도신문을 구독하게 된 계기, 구독 기간?2.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기사는?3. 본보에서 더 다뤘으면 하는 기사(분야)는?4. 추석을 앞두고 지면을 통해 '사랑', '감사' 또는 '화해'의 메시지 한 마디!?김성태 위원장1. 2002년경이었다. 휴가 겸 완도에 왔을 때, 완도는 전임 군수의
총 5.54km로 약 125분이 걸리는 범길과 용길로 이루어지는 5코스는 권덕리 마을 회관에서 말탄바위로 다시 범바위 에서 장기미 해변으로 그리고 청계리 중촌 들샘에서 끝이 난다.낭길의 끝자락에서 바라보면 우측에서부터 차례로 말탄바위와 범바위, 전망대, 새끼범바위가 한 눈에 다 보인다권덕리 마을 어르신들은 호랑이가 말바위를 사냥하려 자세를 한껏 움츠리다 문득 뒤에 있는 새끼 범바위를 바라보는 모습 때문에 범바위라 부른다는 말씀들을 하시는데 그 목소리들이 아주 확신에 차 있어 듣는 이가 뭐라 반박할 수 없을 정도다. ‘그래도 어디가
각급 학교가 여름방학에 들어갔고, 직장들도 본격적인 여름 휴가철이 시작되어 전국의 유명 피서지와 휴양지로 떠나는 피서객들로 붐비고 있습니다.우리 동네도 섬마다에 크고 작은 아름다운 해수욕장과 해변이 흩어져 있어 전국에서 많은 피서객들이 찾아오고 있습니다.우리는 피서를 요란하게 보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사로 잡혀 있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가 있습니다.하지만 피서는 여름철 더위를 피해 시원한 곳으로 자리를 옮기는 것입니다.의미를 더하면 학교생활과 직장생활 등 생업에 지친 우리들의 심신을 풀어주면서 여유를 갖는 것이기도 합니다.며칠 전
‘열사병(heat stroke, 熱射病)’, 폭염에 장시간 노출 시 땀이 나지 않고 체온이 40도 이상(정상 36.5도)으로 올라가 여러 장기가 손상되고 사망까지 이르게 하는 폭염질환이다.우리 몸은 ‘외부변화에 일정한 상태를 유지’하려는 ‘항상성’이 있는데, 폭염 시 정상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여러 조절 시스템이 작동한다. 피부혈류량 증가로 열을 방출하고, 기초대사량을 줄여 열 생산을 최소화 하며, 땀을 통해 열을 발산한다.그런데 ‘열사병’은 ‘체온의 항상성 유지가 깨진 것’으로 땀이 나지 않아 체내에 열이 축적된다. 축적된 열로 고
문맹자의 사전적 의미는 글을 읽거나 쓸 줄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다문화 가족들을 포함해 대략 200만이 넘는 사람이 여기에 해당된다고 한다. 다문화 가족들이야 그렇다고 치자. 나머지 사람들이 공부하기 싫어서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무엇보다 배고픔을 해결하려고 공부를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분들이 그렇게 어렵게 살면서 오늘에 우리나라를 만든 장본인들이다. 그래서 요즘 나라에서나 뜻이 있는 단체 등에서 그런 분들을 대상으로 우리글을 가르치고 있다. 거기에서 공부를 하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기 이름을
기다림(모정) 김영채동산의 소나무 위 달은 높은데그때다드디어 골목길을 올라오는낯익은 발자욱소리열어둔 사립문 밀고한 손에 호미들고 매꼬리 인 어무니적삼은 흰 소금꽃이 피었네땀 절어 버무른 젖무덤 시금한 물향기벌린 두 팔에 안긴 어미는아들을 품었다˝늦었제˝˝엄마˝마당 평상 위에떠다 마시고 남은 물바가지 안에달이 떠 있다별들은 모두 달빛 뒤로 숨어버리고개들도 짖지 않은그윽히 고요한 밤 마당에는엄마 하고달 하고다해서셋이었다
2년 전에 새해를 맞아 마음에 품었던 마하트마 간디의 명언 한 구절은 날이 갈수록 강렬하게 내 가슴 속에서 꿈틀대고 있었다.Live as if you were to die tomorrowLearn as if you were to live forever. - mahatma Gandhi -텍사스 카운티 암 병동에서 근무하는 나는 지난 토요일에도 호흡곤란으로 새파랗게 질려가는 환자의 응급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분주했었고, 전이된 말기 암 환자에게는 암 닥터와 함께 마지막을 예견 해 주어야 만 했었다. 죽음을 눈 앞에 둔 사람들의 마지막
1963년부터 1980년까지 실업문제 해소와 외화획득을 위해 대한민국이 독일에 파견했던 광부와 간호사의 이야기를 우리는 기억한다. 2014년 개봉해 천만관객이 관람한 영화 국제시장에서도 잠깐이지만 파독 광부와 간호사의 애환을 그리고 있다. 제대로 된 일자리 하나 찾기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 먼 이국땅에서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은 개인적으로 악착을 떨며 고통을 이겨냈겠지만, 그들을 떠나보낸 가난한 가정뿐 아니라 가난한 조국에게는 그 노동의 대가가 단비였다.대한민국은 광부와 간호사의 파독 이후에도 오랜 기간 원
여가시간을 집안에서 의미 없이 허비하는 것 보다는 집을 떠나 즐기면서 힐링하는 것이 요즘 관광의 추세다. 덕분에 관광객의 수는 양적으로 팽창하여 우리 지역도 ‘관광객 500만 명 시대’를 말하고 있다. 양적으로는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으니 질적인 것을 추구해야 할 때가 됐다.관광객 수가 늘어가는 시대적 변화의 추세에 맞추어 관광의 형태는 가이드의 깃발 아래 움직이던 단체 관광에서 벗어나서 ‘개별여행자(FIT-Free/Foreign Independent Tour)’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 또 ‘지역의 세계화’라는 신조어가 만들어 질만
큰아이가 아장 아장 걷기 시작하면서 아이는 밖으로 나가는 걸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막 이사를 온 낯설었던 완도에서 아는 사람 없는 저희 모녀에게 갈 곳이라고는 딱히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문화센터도 없고 놀이터도 없는 곳이라 같이 놀 또래 친구도 없는 외로운 아이에게 “그래 책을 보여주면, 그냥 시간 보내는 것보다는 낫겠지?” 하는 생각으로 완도군립도서관을 다니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도서관을 우리만의 비밀아지트처럼 이용하게 된 것 같습니다. 저와 저희 아이는 정말 많은 시간을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며 보냈습니다. 몇 시간이고 조용히 보
완도지역자활센터는 2004년 12월에 보건복지부로부터 지정을 받아 문을 연지 12주년을 맞이하게 됐다.자활센터는 지금까지 우리 사회의 가장 어렵고 힘든 계층에게 희망의 싹을 틔우고 희망의 빗물이 되어 미래의 무지개 문을 열게 하는 견인차 역할을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지난 11년이 너무도 바빴기에 많은 것을 잃었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많은 것을 배웠고, 엄청난 일들을 해 냈음을 본다.특히 우리 참여 주민들의 애환을 들어 보면, “게으르지도 않았고, 나쁜 짓도 하지 않았지만, ‘가난’이란 놈에게 발목 잡힌 후로는 가
"민서야~ 얼룽 와 이거 무그라~" 가제 손수건에 담긴 돼지 수육 몇 점과 절편 몇 덩어리는 엄마가 잔치집에서 먹질 않고 나를 위해 가져오신 맛난 음식이었다. 그렇게 엄마는 늘 자신보다 가족들을 생각하셨다. 밥상을 정성껏 차려 아버지와 우리들에게 주시고는 자신은 누룽지에 신김치 국물 만 대충 드시고 배 부르다고 하셨다. "그저 엄지 발톱 하나가 빠졌을 뿐 이었는데......" 엄마는 자신을 돌보지 않으시고 행상을 하셨고, 겨울이면 미역 공장을 다니셨고, 땔감을 구하려 산에 나무를 하러 가셨다. 그리고 치료되지 못한 오랜 상처
국내 자전거 보유대수 600만대. 자전거 이용인구 1천만 시대다.자전거는 1949. 9. 19 제네바에서 작성한 도로교통에 관한 조약에서 ‘차’로 구분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는 1970년에 가입하여 도로교통법 제2조 16호에 의거 ‘차’로 정의하고 있다. 따라서 자전거를 엄연히 차로 생각하고 타고, 교통법규도 준수 하여야 사고 없이 자전거를 탈수 있다.도로교통에서의 자전거 타는 사람의 의무는 모든 도로에서 교통법규를 준수하고 보행자 등 교통약자의 안전을 지켜주며, 차도에서 다른 교통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아야 하고, 자신의 안전을 위해
괴테에게는 너무나 사랑하는 한 여인이 있었다. 하지만 그 여인과 괴테에게는 심각한 문제가 있었으니, 바로 그 여인의 부모님이 괴테와의 만남을 반대하는 것.이유인즉, 그 여인과 괴테와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날 뿐만 아니라 괴테가 부자가 아니라는 것이었다.어느 날 괴테는 그 여인이 너무나도 보고 싶은 나머지 다짜고짜 그 여인의 집으로 찾아 갔다.하지만 역시나 그녀의 부모는 괴테를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때 괴테. 아무 말없이 주머니에서 성냥갑을 꺼내 불을 붙였다.그리고 이를 의아하게 바라보던 그 여인의 부모에게 말하길. “제발, 제발!
완도읍 1구에서 태어나 자란 나는 완도 초등학교 때에도, 여중 때에도, 완도 여고를 다닐 때에도 우리들의 봄 소풍과 가을 소풍은 늘상 정도리 구계등으로 정해져 있었다. 작년에 가 보았던 내 고향 완도는 그 동안 얼마나 많이 발전했던지 완도 출신인 내가 길을 잃어버릴 정도로 달라져 있었다. 그런데 궁금한 것은 요즘 아이들도 정도리 구계등으로 예전에 나처럼 소풍을 가는 걸까?내가 초등학교 2학년 무렵, 사업을 하시다 파산하신 아버지는 식음을 전폐하시고 술로 하루 하루를 연명하시다 폐인처럼 자리에 눕게 되셨다. 한의원 집 막내 딸로 태어
지난해 어깨관절을 심하게 다쳐 서울에서 수술을 하게 되었다. 수술 이후 상태를 점검하고 회복을 위한 치료를 위해 주기적으로 서울을 오가야만 했다. 교통수단으로 완도에서 서울을 하루에 네 번 오가는 고속버스를 먼저 떠올렸는데, 아쉽게도 당일 왕복하기에는 시간이 빠듯하여 포기하고 말았다.대안으로 생각한 교통편이 기차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완도에서 나주까지는 자동차를 타고 이동하고, 나주에서 고속철도를 이용하여 서울 용산역까지 가는 방법을 택했다. 편도 이용시간이 고속버스는 다섯 시간 반 정도인 반면 고속철도는 세 시간 반 정도면 가능했
올해 완도는 설군 120주년이 되는 해이다. 1986년 남해 바다에 있는 섬들을 모아 완도라는 지명을 받고 힘차게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최근에는 건강의 섬이라는 컨셉에 맞게 힐링과 여유를 갖는 섬으로 인식되어 많은 관광객들이 모여들고 있다. 바다와 산과 그리고 해산물이 어우러져 볼거리와 먹거리가 풍성하다. 양식업의 발달로 해조류와 수산물이 풍부하게 생산되고 유통되고 있어 경제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완도가 다시 부흥하고 있다.지자체와 각 기관들의 활동 또한 매우 적극적이며 진취적으로 보인다. 모두가 행복한 완도를 구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