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도군 6기 집행부의 '실질적 원년’이다. 신우철 군수는 이제 하드웨어 구축을 끝내고 본격적인 ‘소프트웨어’ 가동에 집중하겠다고 여러 차례 밝혔다. 소통․화합위원회, 청렴 옴부즈만 운영, 행복재단의 설립 등으로 ‘모두가 행복한 희망 완도’를 건설할 기본 설계를 마쳤다. 여기에 6기 집행부의 최종병기격인 조직개편과 이에 따른 인사가 단행됐다. 이로써 신우철 집행부의 첫 단추는 꿴 셈이다. 성공하길 빈다. 다만, 걱정되는 것은 있다.이번 조직개편의 가장 큰 특징으로 드는 것은 해양수산 분야의 확대다. 해양수산과를 해양
창조의 근원과 창조경제 구현의 필요성과 더불어 창조경제의 요체인 ‘창의와 혁신,’ ‘개방과 융합,’ ‘도전과 인정’의 생태계 활성화를 위해 완도군 천혜의 자연자원인 농수축산을 어떻게 IT와 융합하여 재정자립도가 5%로 전국 212개 군에서 제일 낮은 어려운 경제여건에서 5만5천명 군민들과 650여 공직자들이 창조적 사고와 혁신과 희생과 봉사정신으로 천년 전 청해진 해상왕 장보고의 위업과 1960∼70년대 수산 전진기지를 이루었던 번성기를 다시 회복해야 한다.현 한국 경제가 겪고 있는 저성장 기조가 대외여건이 호전되면 바뀔 수
도로를 다니다 보면 거의 모든 도로변에 전봇대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렇듯 전봇대는 도로와는 불가분의 관계이다.그런데, 이런 전봇대가 차량과 충돌 될 경우 치명적인 인사사고로 이어지는 것을 우리는 심심치 않게 보아 왔다.지난 시절 한국전력에서는 이런 도로와의 밀착성을 감안하여 교통사고 예방 차원에서 전봇대 하단 부위에 노랗게(검정색 포함) 야간 반사 철판을 부착하여 왔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런 반사판이 부착되지 않은 전봇대가 세워지기 시작 하였다.더불어 지난 시절 부착되었던 반사판도 수년의 풍파를 맞으면서 그 수명을 다하여
본사는 지난달 30일 문화예술회관 문화동3층에서 지난해를 평가하고 2015년 계획을 발표하는 워크샵을 가졌다.지난해 평가에서는 편집부와 그리고 업무부의 부족했던 점을 짚어보고 각자의 자리에서 미숙했던 점을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또한 2015년 완도신문의 변화와 발전을 위해 준비해야할 것들과 편집방향등을 이야기했다. 특히 인터넷 홈페이지 개편과 다양한 분야의 소식을 전하기 위해 단계적인 신문지면 증편을 논의했다. 항상 변화하는 완도신문이 되자, 정확한 정보 전달로 신뢰를 받을 수 있도록 사명감을 갖고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했다.
자식 교육을 위해 공동묘지 부근에서 살다가 시장으로 이사하고 마지막에는 서당이 있는 곳으로 이사를 해서 자식을 훌륭하게 키웠다는 말로 孟母三遷之敎(맹모삼천지교)를 기억할 것이다.우리는 평생을 살면서 매 순간 선택을 하면서 살게 된다. 오늘은 무엇을 먹을지, 무엇을 입을지, 누구를 만날지 일상의 소소한 생활은 모두 우리의 작은 선택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선택의 결과로 스스로에게 칭찬과 후회를 하기도 하지만, 결국 그 선택은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고 또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오는 3월 11일은 사상 처음으로 전국의 1,366개 농·축
보육교사로부터 뺨을 맞고 힘없이 나가떨어지는 네 살 여자아이의 모습은 차마 눈 뜨고 보기 어렵다. 이미 사망한 친아빠 옆에서 인질 노릇을 하다 새 아빠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살해된 16살의 여학생이 느꼈을 공포를 생각하면 너무도 가슴이 아프고 쓰리다. 보육교사의 폭행행위와 살인자의 행위는 용서할 수 없고 용서받아서도 안 된다. 그것은 자유와 평등 그리고 공공의 안녕과 질서유지를 위해서도 당연하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전반적인 시스템도 개선되어야 한다. 또한 피해자와 그 가족들을 위로하고 모든 사회적 시스템을 동원하여 다
본지 971호(9일자)에 실렸던 ‘통학버스 기사, 음주단속에 적발돼 검찰 송치’란 기사 보도 후 며칠 뒤 기자에게 항의 전화가 왔다. 학교운영위원장 가족이라고 밝힌 그는 “기사를 보면 마치 운영위원장이 제보한 것처럼 나갔다. 좁은 지역사회에서 소문이 나 동네가 시끄럽다"는 불만 섞인 말투였다. 얼마 후 운영위원장과의 통화에서 "(운영위원장이) 하지도 않은 일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에 상처까지 받아 어떻게 해명을 하면 좋겠느냐”고 다그쳤다. 또 당시 음주 운전했던 운전기사가 “너 때문에 일이 벌어졌다”라고 오해하고 있다면
선생과 학생이 싸우면 누가 이길까? 학생이 이기고 선생은 진다. 선생은 학생을 이길 수 없다. 이러한 주장에 반론도 있겠지만 이것은 오랫동안 수많은 학생을 가르치면서 깨닫게 된 사실이다. 설령 지식이나 말로 학생을 이겼더라도 그건 이긴 게 아니다. 선생의 행위가 가르침과 모순된다면 이건 더욱더 진 싸움이다. 사실 학생은 자기 행위의 옳고 그름에 상관없이 선생의 행위의 일관성을 본다. 행위의 모순을 찾아내면 더욱더 공격거리로 삼는다. 결국 선생과 학생이 싸우면 선생의 명예손상으로 끝난다. 그래서 나는 학생과 싸우지 않기로 결심했다.얼
세계 최대 인터넷 검색 서비스 회사인 구글이 2014년 12월 운전자 없이 인공지능으로 자동 운행되는 무인자동차 실물모형을 공개했다. 미국 네바다 주 교통부로부터 면허도 획득했다. 2017년 상용화를 목표로 몇 가지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단계라고 한다.이처럼 세계는 빠르게 변하고 우리의 생활 역시 편리하고 안전하게 바뀌고 있다. 스마트폰등 전자기기의 보급과 확산으로 첨단 기술과 정보가 우리 생활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반면에 우리 주변의 생활상은 어떤지 보자. 섬으로 이루어진 까닭에 이동을 위해 우리는 배를 꼭 타야 한다. 세월호 사
담배 값이 올랐다. 오르기 전에 사서 저장해 두는 사람도 있다. 담배는 백해무익하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버리지 못하고 계속해서 피우는 것이 마치 아편처럼 중독성이 있어서 그럴 것이다. 아무 이익도 없다는 담배가 언제 어디에서 왔을까?지금이야 잘 쓰지 않는 말이지만 60년대까지만 해도 담배를 권연(얇은 종이로 가늘고 길게 말아 놓은 담배. 권연초, 궐련초)이라고 불렀는데 이게 잘못 전해지면서 골연으로 부르기도 했다. 최초 기록으로는 인조실록(1616~1617)에 바다를 건너 들어와 간혹 피우는 사람들이 있었으나 1621~1622년에는
한국전쟁 당시 흥남부두에서의 철수, 60년대 파독 광부들과 간호사들, 70년대 베트남 파병, 80년대 이산가족 찾기는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가슴 아픈 기억이며 역사이다. 특히 그 시대를 살아왔을 우리 아버지 세대들에게 영화 국제시장은 오래된 사진첩을 들춰보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아버지 세대들의 자전적 영화이기 때문이다.자신의 꿈은 가족들을 위해 일찌감치 포기하고 끝없는 희생 속에서도 ‘괜찮다’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되뇌고, 견디기 힘들었던 세상 풍파를 자식이 아닌 자신이 겪어 ‘다행이다’라고 말하던 영화 속 아버지, 그
앞으로 서울 용산에서 광주 송정까지 1시간 33분 걸린다는 소식이다. 서대전을 경유하지 않을 경우다. 서대전을 경유하는 문제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서로 힘겨루기를 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어쨌거나 그 시간이면 출퇴근도 가능한 시간이다. 항공편 이용자가 줄어들 것 같다.지난해 말 김영록 의원실 주관으로 서울~제주 사이 고속철도 건설을 제안하는 토론회도 열렸다. 최근 본지와의 신년 인터뷰에서 김 의원은 “단순히 우리 지역의 관점이 아닌 국가 전체를 위한 미래 성장동력을 창출하기 위한 방안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충분히 공감한다.이처
교수신문이 '2015년 새해 희망을 담은 사자성어로 ‘정본청원(正本淸源)’이 선정됐다. 교수신문은 지난달 8∼17일 전국의 교수 724명을 대상으로 새해 ‘희망의 사자성어’를 설문한 결과 265명(36.6%)이 정본청원을 선택했다고 4일 밝혔다. 정본청원은 ‘형법지(刑法志)’에서 비롯된 말로 ‘본을 바르게 하고 근원을 맑게 한다’는 뜻이다. 이승환 고려대 교수(철학과)는 “관피아의 먹이사슬, 의혹투성이의 자원외교, 비선조직의 국정 농단과 같은 어지러운 상태를 바로잡아 근본을 바로 세우고 상식이 통용되는
"3등은 괜찮다. 하지만 3류는 안된다" "여기까지라는 말은 없습니다. 항상 지금부터입니다.“ 남자이면서 할머니 같은 가수 김태원씨가 했던 말이다. ‘국민할매’라는 애칭까지 얻으며 폭 넓은 방송활동을 하고 있는 김태원씨가 인터뷰에서 했던 인상적인 말이 또 있다.그것은 ”시에 나오는 언어를 쓰라"는 말이었다. 아름다운 말을 자주 사용하려 한다는 것에 지속성은 없을지라도 아름답다고 말하는 순간 일상의 흔한 것들이 진짜 아름답게 보인다는 것이다. 그 말이 정말 맞는 것 같다.광화문 광장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교보생명 빌딩 전면에
제416주기 이충무공 순국제를 맞아 경건한 마음으로 이순신 장군의 애국 애족 애민 정신과 유비무환의 숭고한 정신을 다시 한번 되새게 봅니다.충무사가 있는 여기 고금도와 이순신 장군과의 인연은 실로 깊습니다.이순신 장군은 7년 왜란의 마지막 해인 무술년(1598년) 봄에 8천 수군을 이끌고 이곳 고금도진에 수군본영을 정하고 최후의 결전을 준비합니다.이순신 장군을 전쟁 전에 전라좌수사로 천거하고 전쟁 중에 영의정을 지낸 서애 유성룡이 남긴 은 고금도에 관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당시 이순신의 휘하에는 8,000명이 넘는
매생이 양식하는 고금도 후배가 공중파를 탔다. 한 라디오 프로그램 인터뷰가 생중계됐다. 매생이를 뜯어 먹는 물새 떼들 때문에 양식장 인근 바다에 BMW를 실은 바지선을 띄우고 차안에서 기거하며 주야로 공포탄을 쏘면서 매생이를 지킨다는 얘기다.사고가 흔한 시대라서 그들의 안전이 걱정됐다. 해경에 문의해보니 선박안전법 위반 가능성을 언급했다. 바다로 간 자동차는 한두 대가 아니었다. 티코도 갔고 마티즈도 갔다. 고금, 약산 모두 합해서 5~6대 떴다.그 뉴스를 지켜보면서 슬픔에 뭉클해졌다. 또 다른 후배에게서 들었던 이야기가 오버랩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