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바다가 만나는 곳에서 지금까지 기다림의 연속이다. 파도 소리, 풍금 소리, 바다 새와 함께 춤을 추는 곳은 영원히 지울 없는 사랑이다. 연둣빛 바닷물은 앞으로 갈 길을 열었다. 새벽 고깃배가 들어오는 불빛으로 살아가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러나 이제 마음을 밝히는 여명이 되고 만다.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서 풀빛이 돋아나고 민들레 하늘로 흘러간다. 늘 푸르고 그 많은 민들레 씨앗은 어디에서 있을까. 바닷바람이 밀려오면 그냥 흘러보냈다. 고깃배가 떠나가도 곧 돌아올 것으로 생각했다. 세월은 가깝게 있다가 어느 날 멀리 떠나버리고
끝. 시작이란 인연이 끝이 나면 자연스럽게 잊혀지고 언젠가는 소멸하겠지만, 그 끝은 시작이란 새로운 인연으로 이어진다. 인연이 있으면 천리를 떨어져도 만나게 되고 인연이 없으면 얼굴을 마주 보고 있어도 만나지 못한다(有緣千里來相會 無緣對面不相逢 한비자)내가 누군가를 바라보고 있어도 그를 만나지 못하기도 하고, 그가 나를 보고 있어도 내가 다른 곳을 보고 있다면 만나지 못하기도 한다. 어쩌면 세상살이가 모두 인연임으로 물건을 잃어버려서 찾지 못하는 것도 같은 이치. 그래서 내게 찾아온 인연이 다하지 않도록 지금 이순간, 바로 이 순간
더우면 꽃이 피고 추우면 잎 지거늘솔아 너는 어찌 눈서리 모르는가구천(九泉)에 뿌리 곧은 줄 그로하여 아노라- 五友歌 中 松 - 우리 완도에는 어디에 내어놔도 손색이 없는 자랑할 만한 문화유산이 있으니 보길도의 부용동원림(芙蓉洞園林)이다. 이곳은 고산 윤선도가 조성한 별서정원(別墅庭園)으로 조선시대 별서정원의 백미(白眉)이다. 고산은 병자호란의 혼란기에 임금을 호종하지 못한 죄책감으로 은둔생활을 하고자 제주도로 향하였다.이때 보길도 연안을 항해 중 겨울철 폭풍을 만나 보길도의 대풍구미(大風구미, 남쪽에서 불어오는 큰 바람을 피할 수
황제 일행이 머물렀던 황제도는 완도 금일읍에 속한 섬이다. 혹자는 진나라 시황제가 불로초를 구해 오라며 보낸 서불 일행이 다녀갔기에 황제도라 불렀다고 한다.그러나 진시황의 명을 받은 서불이 다녀간 것인지는, 바위에 새겨진 흔적 같은 뚜렷한 증거가 남아있지 않다. 그 대신, 섬의 서남쪽에 있었던 가마솥 터에는 황제 일행이 쉬면서 밥을 해 먹었다는 전설이 깃들어 있다.보통 때는 물 속 깊이 잠겨있어 볼 수 없고, 음력 2월 15일부터 3월 15일 사이 최저 수위가 됐을 때인 영등살에만 볼 수 있다며 ‘완도의 외딴 섬’이라는 책자에 소개
나에게, 나에게... 당신 보다 더 절박한 시간이 다시 또 찾아 올까요?당신이 전부란 걸 알게 되었을 때, 당신은 떠나고 없었죠.하지만 난 그곳에 멈춰 서 있었어요.다신 볼 수 없는 절망감이었지만, 가련하게 뛰는 심장은 누군가의 숨막히는 사랑으로 잠시 쉬어갈 뿐, 그 치열했던 그리움에 기대고 있음은 더한 사랑의 기억으로 당신 곁에 머물기 위해서였죠.당신이 다시 올 수 없을지라도 난 그곳에 서 있을 거예요. 영원토록요!만나야 할 순간, 만나지 못한다는 것. 그것만큼 가슴 아린 것도 없을 것인데, 사랑하는 이에게 자신의 아픈 모습을 보
기다림의 연속은 길 위에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로 걸어왔다. 서로 보이지 않는 끌림이 있다. 형언할 수 없는 순간만이 있었다. 꽃과 나무 사이에 이름 없는 바람이 와서 또 길을 떠난다. 두꺼운 입술이 너를 사랑한다고 말할 때 너는 아직 가냘픈 작은 여인이었다. 산이 움직이는 것은 네가 붉은 열정이 아직 살아있기 때문이다. 덥석 땅에 떨어지는 너의 모습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짧고 긴 여운이 번갈아 가며 너는 아직 울림이 깊다. 너의 입술과 심장 사이는 얼마나 먼 거리인가. 이제 손을 잡을 때가 됐다. 그러나 족히 닿을 수 없는 거
완도읍 정도리 마을에는 천년 세월을 지켜온 마을 숲이 있다. 구계등(九階嶝) 뒤편의 울창한 정도마을 당(堂)숲이자 방풍림이다.기록에 의하면 구계등은 신라시대부터 왕실의 녹원지(錄園地)로 지정되어 보호되었으며, 400여년 전 나씨와 강씨에 의해 마을이 형성되면서부터는 마을의 당숲이자 방풍림으로 주민들로부터 보호를 받아왔다고 한다.이 숲은 후박나무를 비롯한 동백, 생달나무 등 상록활엽수와 느티나무, 갈참나무 등 낙엽송이 혼재되어 있는데 가장 큰 특징은 대부분의 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서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숲은 크게 8개 군락으로 나
완도의 옛길을 걷다가 찾은 청해관. 이곳은 통영 세병관, 여수 진남관과 함께 현존하는 유서 깊은 수군 진의 객사이다. 완도군립도서관 앞에 자리한 청해관은 한국의 전형적인 단층 건물로 완도군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다. 청해관은 1722년 가리포진 124대 첨사 이형이 창건했다고 전한다. 1869년 204대 첨사 이위소가 중수했고, 196대 첨사 홍선은 호남제일번(湖南第一藩)이라고 쓴 현판을 삼문에 걸었다. 지난 1990년대에 뜻하지 않게 현판이 도난당해 옛 자료를 토대로 복원했다. 호남에는 '호남제일'이라고 쓴 현판이 여러 곳에 붙
완도군립도서관에서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산책로를 걸었다. 예전에도 몇 번은 다녀갔지만 이곳은 보면 볼수록 정감이 간다. 까마득히 잊고 지내던 고향을 찾은 느낌이랄까. 옛것이나 빈티지 타입을 보면 마음이 편하다. 보는 내내 쌓였던 긴장감이 해소되기 때문일 것이다. 길을 걷다가, 우연히 발견한 빗돌에 깃든 사연을 알아가는 것도 소소한 재미 중 하나다. 30년 전 여행지로 즐겨 찾았던 느낌, 골목길이 보이고, 시간은 여전히 그때 그 장소에 머물러 있다. 산책길을 걷다가 발 아래로 내려다보는 마을전경과, 주도 앞 바다와, 가까이서 들려오는
지난번 고금면 윤동마을 은행나무에 이어 두 번째로 은행나무 이야기를 쓴다. 윤동마을의 은행나무가 독립개체로 이순신 장군의 호국의 혼이 들어있다면 이번에 다루는 은행나무는 백여년된 수십그루의 은행나무가 군락을 이루며 가을이면 은행잎 비를 내리는 곳이다. 은행(銀杏)은 원래 우리나라와 중국에서만 자라는 나무로 알려져 있다. 자라기도 더디지만 까다로운 것은 암수 나무가 있어야 열매를 맺는 자웅이주(雌雄異株) 식물이다. 봄부터 가을까지푸르름을 자랑하던 잎은 가을이 되면 아주 샛노랗게 물들어 누구나 좋아하고, 나무는 켜놓으면 무늬가 촘촘하고
그동안 무심히 지나오다가 이제 떠나버리고 없을 때도 그 가치를 무심히 바라본다. 서로 열렬히 사랑한다고 인식하고 있으면 그건 때가 되면 식게 마련이다. 삶은 사회 통념적인 것이 아니다. 자신이 어떤 존재임을 끊임없이 되묻기 위해 길을 떠난다. 매일 길 떠나는 방랑의 여정과 같다. 찬비 속에 나뭇잎은 시간의 끝을 놓지 않고 있다. 시간 위에 운명의 길동무는 내 안에 있다. 오늘 일어나는 일을 섬세하게 들여다보고 이들 곁에 조용히 떠나는 것과 또한 다가오는 것을 생각한다. 서로 마주 오는 것을 지날 때와 멈춰있는 사물을 섬세하게 관찰한
이 순간 내가 별을 쳐다본다는 것은그 얼마나 화려한 사실인가오래지 않아 내 귀가 흙이 된다 하더라도이 순간 내가 제9교향곡을 듣는다는 것은그 얼마나 찬란한 사실인가그들이 나를 잊고내 기억 속에서 없어진다 하더라도이 순간 내가 친구들과 웃고 이야기한다는 것은그 얼마나 즐거운 사실인가 인연으로 유명한 피천득의 시, 마치 상냥한 바람 사이를 걸어 당신에게로 가는 길이 열리는 듯하다. 피천득의 시는 꼭 남녀간의 열열한 사랑만을 말한 것은 아니다. 친구 간, 동료 간, 사제지간과 형제지간, 부녀모자 지간의 사랑이 저러해야 한다는 걸 말하고
긴 수염과 청룡언월도를 휘두르며 전장을 누비던 사내. 만 명의 군사에 필적하는 용장이었던 촉나라 장수 관우는 어떻게 고금도에서 신이 되었을까? 완도의 고금도 이충무공 유적지인 묘당도에는 관우를 기념하는 관왕묘비가 있다. 묘당도의 이름 또한 ‘관우를 모시는 사당인 관왕묘가 있는 섬’이란 의미를 붙여 새긴 지명이다.삼국지에서 관우는 뛰어난 장수이자 지휘관이었다. 중국역사서에 여러 장수가 나오지만 사당을 지어서까지 추배하는 무인은 관우뿐이다. 명대에 걸쳐 청의 황실에서는 수차례 시호를 내렸고, 마침내 ‘충의신무영우인용위현호국보민정성수정익
우리지역에는 완도라는 지명으로 학명을 받은 아주 독특한 나무가 있다. 감탕나무와 호랑가시나무가 자연적으로 교잡하여 탄생된 완도호랑가시나무이다.이 나무는 인간이 생각 할 수 없는 도저히 이루지 못할 초 자연적인 사랑을 이루어 탄생한 나무이다. 완도지역에 많이 자생하는 감탕나무와 호랑가시나무가 오랜 시간동안 만나 자연적으로 교잡하여 탄생된 나무로 학계에 보고되고 있다. 완도호랑가시나무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지역에 흔한 감탕나무와 남부지역에 다양한 분포를 보이고 있는 호랑가시나무를 알아야 한다. 감탕(甘湯)나무는 상록교목(常綠喬木)으
서양인들이나 현대인들에게 달을 그리라면 필경 달의 둘레를 짙은 색으로 칠한 후, 그 속에다 달의 색을 그려 넣을 것이다. 그러나 예로부터 동양인들은 달을 칠하는 대신 달 뒤에 있는 구름의 색을 명도로 넣어 자연스럽게 달의 존재를 드러내었다.이를 일러 홍운탁월(烘雲託月).그냥 달이 아닌 구름을 물들여서 그 물들임으로 달을 드러나게 한 후. 거기에다 배꽃이 휘날리게 그려 넣으면 교교한 달빛 아래에 향기까지 더해져 최고의 달이 탄생하는데, 나로 인하여 누군가가 드러나는 일. 시와 사랑, 예술이 하는 일이다.언젠가 네이버밴드에 할머니들에게
넘침이 많아서 불행하다. 스스로 만족할 줄 모른다. 추운 겨울날 스스로 견뎌내는 사철나무가 있다. 하늘이 주는 햇빛으로 광합성을 하고 우리 삶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 우리 지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우연한 결과들이 많다. 나무는 이산화탄소를 흡수하여 단백질을 만들어 낸다. 약 20몇 억 년에 이러한 광합성의 부산물로 산소가 대기 중에 축적되어 오존층을 형성했다. 30몇 억 년에 이르는 생명의 역사가 속에서 수많은 우연의 결과가 쌓이고 쌓인 결과 지금의 현대의 이르렀다. 생명은 위대하다. 운명과 운명의 조합으로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이
그대 못 보았더냐!궁복산 가득한 황칠나무를금빛 액 맑고 고와 반짝반짝 빛이 나네껍질 벗겨 즙을 받기 옻칠 하듯 하는데아름드리 나무에서 겨우 한 잔 넘칠 정도상자에 칠을 하면 검붉은 색 없어지니잘 익은 치자 물감 이와 견줄소냐서예가의 경황지가 이로 인해 더 좋으니납지, 양각 모두 다 무색해서 물러나네이 나무 명성이 자자해서박물지에 왕왕이 그 이름 올라 있네공납으로 해마다 공장(工匠)에게 옮기는데서리들의 농간을 막을 길 없어지방민이 이 나무 악목(惡木)이라 여기고서밤마다 도끼 들고 몰래 와서 찍었다네지난 봄 조정에서 공납 면제 해준 후
한 인간은 꿈의 세계에서 내려왔다.그 꿈을 향해 가는 길에서 어느 날은 고뇌와 혼란 속에서 무수한 질문의 노정을 걷고, 어느 날은 쉼표같은 나무 그늘에 앉아 삶의 성찰과 반성을 찍기도 하고.그러다 어느 날은 그 어느 날보다 가슴이 뛰는 순간을 맞이한다. 그렇게 사랑하고 그렇게 고뇌하며 그렇게 희망하면서 내 삶을 머리에서 가슴으로 인도해 발끝까지 여행할 때, 한 송이 아름다운 꽃이 피어나 온세상을 맑은 향기로 채우는 것.자존(自存). 내 안에 무엇을 담을 것인가를 궁금해 하기 보단 내 안에 무엇이 살고 있는 지를 궁금해 한다. 내 안
길가에 야생화를 보듯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굳이 설명할 필요 없다. 이미 그 해답은 다 알고 있다. 나의 길을 가다가 갑자기 의문이 생기면 그냥 그 길로 내버려 두는 것이다. 나 혼자 의문을 되묻고 자문자답하는 식으로 삶은 그대로 흘러가는 것이다. 지상의 모든 물질은 연결되어 있다. 그렇다고 마음과 생각이 연결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자유의지가 있다. 자기의 운명은 자기 결정권에 있다. 그만큼 책임지는 일이 많다는 것이다. 이성이 미덕인 합리주의 시대에서 우리는 한 개인의 가치는 말살됐다. 자기 표현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알
신지도는 그동안 명사십리해수욕장에 가려져 원교 이광사 선생이나, 송촌 지석영, 경평군 이세보등 많은 문인과 학자들이 유배와 생활하였던 곳이나 외부로 크게 알려지지 않았다. 신지면 금곡마을에는 원교 이광사 선생이 신지도 유배 시절 심지(心志)를 굳게 하기 위해 심었다는 수 백년 된 낙낙장송(落落長松) 한그루가 마을 입구를 떡 하니 지키고 있다. 1755년 3월 의금부. 영조는 나주벽서사건에 관련된 죄인들을 친히 국문하고 있었다.백부(伯父) 이진유(李眞儒)와 연좌되어 의금부에 끌려온 이광사(李匡師)는 목숨이 경각에 달려있었다. 이미 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