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게는 가을동안 잡고 겨울에 잠깐 쉰 뒤 봄부터 6월까지 또 잡았다.7~8월은 산란철이라 금어기. 꽃게잡이 때는 한사리 동안 배에서 생활 하다 잠깐씩 집에 다녀오고는 내내 바다에서 살았다. 꽃게잡이 때 바람이 불거나 그런 날은 굴업도로 들어갔다. 바람이 그치지 않으면 며칠씩 굴업도에서 놀고 그랬다. 민어파시의 고장 굴업도의 영화가 꽃게의 시대에도 이어졌었다. 그물에 걸린 게를 딸 사람들도 데리고 가서 굴업도에 방 얻어주고 지내게 했다.덕적도 근해에서 꽃게를 잡으면 덕적도 독강으로 운반선이 실으러 왔다. 좋은 물건은 전부 일본으로 갔
조아비(曺娥碑)와 서묘문(誓墓文)의 류는 겨우 볼 만한 것도 더욱 적으며 도덕경(道德經)은 세상에 전하지 않는다. 세상에 전하는 것은 조맹부가 쓴 안작(鴈作)으로 비속하여 볼만한 것이 못된다. 유교경(遺敎經)은 혹 당나라 때의 승려 도수(道首)의 글씨라고도 말하는데 글자 모양은 비록 속되나 또한 조맹부가 쓴 도덕경과 비교할 바는 아니다.이 서첩은 매 획을 그어가는 가운데 반드시 대략 필봉을 틀어 한 번 굴려서 모양을 만드니 정도(正道)는 아니다.내가 해서로 쓴 유교경은 그체세와 획의(畫意)가 자못 당나라 이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시행을 앞두고 언론인 전문화 교육의 일환으로 ‘역사와 문화를 활용한 도시재생 연수’를 실시했다. 는 국내외 도시재생 추진 사례를 통해 그 의미와 정책 방향을 점검하고 대안을 제시하기로 했다. -편집자 주- 생태교통 행궁동은 보행자들의 천국...차 없는 거리∙정조대왕 옛길∙쌈지공원 등차 없이 사는 미래 체험 ‘생태교통 수원2013’의 무대인 행궁동 축제가 9월 한 달 열렸다. ‘생태교통 수원2013’ 특화거리
완도군청 해양수산과가 2011년 연근해어선 감척사업을 추진하면서 자격조건이 미달된 사업자에게 보조금을 집행해 예산을 낭비했다.특히 해양수산과는 ‘연근해어선 감척사업 집행지침’규정에 따라 연안복합 어업 폐업지원금을 제외한 나머지 어선감척 지원금 1천4백만 원으로 계약체결 해야 했다. 하지만 사업대상자에게 ‘2011년도 연근해어선 감척사업’연안어업 폐업지원 보조금 2천8백만 원을 포함한 총 4천2백만 원의 수산보조금을 부당하게 지원해 감사에 지적당했다.전남도에서 공개한 감사결과에 따르면 완도군 해양수산과에서는 2011년 12월 ‘201
노화중학교 총동문회(회장 김영남)에서 오는 13일 서울송파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제8차 정기총회 및 한마음 큰 잔치"행사를 갖는다. 김영남 회장은 “이번 한마음 큰잔치는 1만여 명의 노화중 동문의 날로 기록할 것이다. 모든 동문 가족들이 모여 그간의 회포와 정을 나누는 자리가 됐으면 좋겠다. 많이 참석해 주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인천 거북시장에서 112번 버스를 탄다. 신현 치안센터 정류장에서 밤색 외투를 입은 여자 하나 차에 오른다. 버스는 빈 좌석이 많다. 여자는 두리번거리지도 않고 주저 없이 빈자리에 가 앉는다. 거침없는 여자의 태도가 부럽다. 나는 버스에 오른 그 짧은 순간에도 어느 자리에 앉을까 계산하며 머뭇거리고 주저 한다. 빈자리가 하나뿐이라면 나 또한 선택의 여지없이 앉을 것이다. 하지만 자리가 두 개만 남아도 저울질하느라 내 머리는 복잡해진다. 대체 짧은 거리를 가는 시내버스 좌석 하나 잘 잡았다고 얼마나 큰 이득을 얻겠는가. 그 사소한 선
정표(鄭杓)가 말하기를 “황정경(黃庭經)은 왕희지가 쓴 것이 아니고 영승(永僧)서호(徐浩)의 무리가 쓴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이는 반드시 상세히 검토하고 한말일 것 이다. 그러나 나는 감히 믿지를 못하겠다. 옛 서첩으로 훌륭한 것은 전혀 우리나라에 전래된 것이 없었는데 내가 옛날 찰방(察訪)이서(李敍)의 집안에서 본 악의론(樂毅論)과 근래 상서(尙書) 민성휘(閔聖徽)집안에서 얻은 상찬(像贊)은 모두 지극히 뛰어나고 교묘하였다.내가 일생동안 필력을 얻은 것은 오로지 이두서첩에서였다. 대저 옛 서첩은 모두 여러 번의 번모(飜慕)를 거
완도군청 해양수산과가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최근 5년 동안 수산보조사업 총 19건에 18억4천9백2십만 원의 예산을 사용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다음 회계연도로 이월까지 하고서도 예산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당했다.또한, 2011년에는 해파리 구제장비 지원 사업도 같은 맥락이다. 예산 2천만 원을 확보해 놓고 사업추진을 못하고 다음 회계연도로 사업비 전액을 이월하기도 했다.전남도에서 공개한 감사결과 자료를 보면 완도군 해양수산과는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수산분야 민간자본 보조사업을 추진하면서 각 단위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시행을 앞두고 언론인 전문화 교육의 일환으로 ‘역사와 문화를 활용한 도시재생 연수’를 실시했다. 는 국내외 도시재생 추진 사례를 통해 그 의미와 정책 방향을 점검하고 대안을 제시하기로 했다. -편집자 주- ‘생태교통 수원’ 낙후 도심 부활 신호탄...행궁동 경관 일신, 공방거리 팔달문시장 특수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되는 ‘생태교통 수원2013’이 수원화성 성 안 마을 원도심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고 있다.수원시는 9월 한 달
풀등에 발을 내리자 곱고 부드러운 모래땅이 나그네의 지친 몸을 받아 준다. 풀등은 신기루가 아니라 바다의 오아시스다. 예전에는 썰물 때면 풀등의 웅덩이에 갇힌 꽃게, 새우, 광어 등을 거저 주어 담을 수 있었다 한다. 서해 바다에 물고기들이 넘치던 때 이야기다. 오늘 풀등은 바다의 사막처럼 황량하다. 겨울 동안 풀등을 떠나 있던 거주자들 대부분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수온이 높아지는 5,6 월이면 그들이 다시 몰려 올 것이다. 그 때는 깊은 바다 속에서 추위를 피하던 골뱅이도 풀등으로 올라와 몸을 숨기고 방게들도 무리지어 다닐 것
삼분비(三墳碑)의 가볍고 거친 획 구사나 무디고 속된 결구같은 것은 역산비(嶧山碑)와 같은 자리에 둘 수 없으니 이양빙 집에서 수레를 끄는 종도 마땅히 삼분비처럼 쓰지는 않을 것이거늘 하물며 지금 세상 사람이 이것을 본받아 쓴다면 그런 사람은 까마득히 미치지 못할 자일 것이다.미불(米芾)이 말하기를 “글씨는 예서가 성행함에 이르러 대전(大篆)의 옛 법도는 크게 파괴 되었다. 전서와 주서는 각기 글자의 형태에 따라 크거나 작게 썼기 때문에 온갖 사물의 형상을 알 수 있어서 각각 글자 자체만으로도 (형상에 나타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시행을 앞두고 언론인 전문화 교육의 일환으로 ‘역사와 문화를 활용한 도시재생 연수’를 실시했다. 는 국내외 도시재생 추진 사례를 통해 그 의미와 정책방향을 점검하고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정부, 특별법 시행 목전 ‘도시재생 본격화’ 전국 지자체중 절반가량인 128개 지자체가 도심쇠퇴를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방치할 경우 도시 내 불균형과 도심공동화 심화를 물론 사회적 갈등 및 국가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정부는 도시재생사업단을
완도군이 사업자에게 지급한 민간경상보조금이 목적 외에 사용되고 정산서를 허위로 작성한 사실을 알고도 묵인했다가 감사에 적발됐다.또한, 민간경상보조금에 포함되어 있는 비용 외에도 군비로 또 지출, 중복 집행하여 회계질서를 문란 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지적을 당했다.전남도에서 공개한 감사결과 자료를 보면 완도군은 ‘2012년 수산경영 대상평가’ 상사업비(우수상)을 지원받아 ‘2012 전복수출 MOU활성화 선진지 견학’을 위하여 2012년 제3회 추가경정예산에서 확보한 후 당해 연도 12월 26일에 00전복(주)에게 민간경상 보조금 2
지금 2세의 조서를 새긴 것을 보면 필의가 더욱 연약하고 느슨하여 전보다 크게 못하니 위작 가운데 또 위작이 있는 셈이어서 한사람의 솜씨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두보(杜甫)의 노련한 안목으로도 그 글이 잘못되었음을 깨닫지 못하고 단지 “대추나무에 옮겨 새긴 것이 살쪄서 참모습을 잃었다”라고 하였으니 왕세정의 무리가 깨닫지 못한 것을 어찌 힐난할만한 일이겠는가?무릇 획을 긋는 법은 획의 처음과 끝, 중간부분 할 것 없이 단지 균일하게 힘을 써서 밀고 나가다가 바야흐로 힘을 써서 획이 끝나는 부분에 이르면 그칠 따름이니 전서, 예서,
동자승은 손가락 하나를 세워 보였다. 객승은 아무 말 없이 돌아갔다. 구지 선사가 돌아오자 동자승은 자초지종을 이야기 했다. 그러자 구지 선사가 물었다."그 스님에게 했듯이 나에게도 대답 해 보거라. 불법이 무엇이냐?"동자승은 손가락 하나를 세워 보였다. 구지선사는 칼을 꺼내 동자승의 손가락을 싹둑 잘라 버렸다. 동자승은 비명을 지르며 문밖으로 뛰쳐나갔다. 선사가 동자승을 불러 세우고 다시 물었다."그래 불법이 무엇이냐?"동자승은 순간적으로 손가락 하나를 세워 보였다. 아차, 그런데 손가락은 이미 잘리고 없지 않은가? 그 순
인천시 옹진군 자월면에는 두 개의 이작도가 있다. 대이작도와 소이작도. 자월도에서 배를 타고 소이작도로 건너왔다. 이작도(伊作島)의 옛 이름은 이적도(伊賊島)였다. 후일 이작도로 바뀌었다. 자월면 사무소가 발행한 안내서는 이적도란 이름이 임진왜란 때 피난 온 사람들이 전쟁 뒤에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섬에 숨어 살며 해적질을 한 데서 유래 됐다고 기록하고 있다.해적들의 집터와 무덤이 섬의 북쪽 휘청골에 남아 있다고 전한다. 가파른 고갯길을 넘어 휘청골로 간다. 휘청골 해변은 작고 옹색하다. 큰 무리의 해적이 숨어 살기는 좁아 보
진나라 때는 일찍이 역산비문이 없었다. 그렇다면 시황기(始皇記)에서는 어찌하여 추(鄒) 땅의 역산에 올라가 돌을 세우고 노(魯)나라 여러 선비들과 돌에 새길것을 의논 하였다라고 하였는가? 말하자면 단지 돌만 세웠을 따름이니 새길 것을 의논하고 결과적으로 새기지는 못했던 것이다. 과연 글을 새겼다면 태사공(太史公)이 역산비보다 뒤에 나온 6송(六頌)은 모두 사기(史記)에 기록하면서 이 비문을 빠뜨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처음 순수(巡狩) 할때의 첫째 비석인데 어찌 기록하지 않았던가? “역산비”는 애초에 글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폭풍이 몰려오고 있었다. 아침 출항할 때까지만 해도 파도는 잔잔했고 바람은 미풍이었다. 포구에 나간 여자는 고기잡이 떠난 남편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원했다. 돛을 달고 나갔던 어선들이 하나둘 서둘러 귀항했지만 끝내 남편의 배는 보이지 않았다. 사나운 폭풍이 섬을 삼킬 듯이 달려들었다. 걱정과 불안에 여자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다가 새벽녘에 깜빡 잠이 들었다. 그런데 꿈에 남편이 나타났다. 남편은 자신이 죽도의 굴에 있다고 이야기 했다. 꿈을 깨고 난 뒤에도 현실처럼 생생해 아내는 몸서리를 쳤다.연 이틀 폭풍이 불다 바다는 다시 아무
삼척만호 김인우는 안무사의 직을 받고 울릉도로 향했다. 안무사는 해도에 숨어든 자들을 뭍으로 압송하라는 조정의 명을 받들었다. 연례 행사였다. 안무사는 전함 두 척에 싣고 온 군사들을 이끌고 울릉도로 진입했다. 안무사는 황토구미를 주둔지로 삼고 섬 곳곳을 뒤져 은둔한 자들을 빠짐없이 잡아 들였다.뭍으로 돌아가기 전날 밤, 안무사의 꿈에 동해의 해신이 나타났다. 해신은 동남, 동녀 하나씩을 두고 가라고 명했다. 다음날, 유학을 신봉하는 안무사는 해신의 명을 무시하고 배를 출항시켰다. 해신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자신은 지상의 신인
송나라 고종(高宗)이 말하기를 “선비들이 왕왕 전서, 예서, 해서, 행서, 초서에 각기 일가를 이루고도 여러 서체에 두루 통하지 못한 경우가 있으니 대개 각 서체의 체세(體勢)가 만가지를 달라도 그것을 쓰는 원리는 하나이다. 진실로 그 도를 얻으면 진서와 예서에서 터득한 것을 해서에 쓰고 또 행서와 초서에 쓸 따름이다.만약 다섯가지 서체의 필의가 본래 같지 않다고 생각하며 번번이 그 필의를 바꾼 뒤에 다섯 서체의 필의에 통고하고자 한다면 또한 글씨를 아는 자가 아니다. 그러므로 무릇 세상 사람들 가운데 해서에 능하면서 행서와 초서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