냐타폴라 사원이 있는 광장 근처의 카페로 들어가 2층의 광장을 내려다보기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대원들은 차 한 잔을 마시면서 잠시 휴식을 즐긴다. 광장은 여전히 붐비고 활기가 넘쳐 보인다. 광장에서는 수많은 관광객들과 주민들이 한데 어울려 젊은이들이 벌이고 있는 공연을 구경하고 있다.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남아있는 많은 볼거리들을 제한된 시간 내에 돌아봐야 하니 발걸음이 빨라진다. 다음 행선지는 냐타폴라 사원에서부터 도기 광장(Pottery Square)을 거쳐 더바 광장(Durbar Squate)으로 가는 동선인데, 지나가
파슈파티나트 힌두사원에서의 미묘한 여운을 뒤로 하고 카트만두에서 북동쪽으로 약 15㎞ 떨어진 중세 도시인 박타푸르를 찾았다. 15~18세기경 카트만두 계곡에서 네팔 역사상 가장 찬란한 문화를 꽃피우며 번성했던 말라 왕국의 3대 고도(카트만두, 파탄, 박타푸르) 중에서도 옛 정취가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곳으로, 옛 이름은 '바드가온(Bhadgaon)'이다.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으로 과거의 영광을 살펴볼 수 있는 왕궁과 사원 등 수많은 건축물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박타푸르 중세도시는 지금도
카트만두 중심가에서 동쪽으로 5km 떨어진 바그마티(Baghmati)강을 접하고 있는 ‘파슈파티나트 사원’은 힌두교 최대의 성지(聖地)이며, UNESCO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다. 이 사원은 원래 힌두교 ‘파괴의 신’이라는 시바신에게 헌납한 사원인데, 파슈파티나트(Pashupatinath)는 시바의 여러 이름 중 하나로, 파슈(Pashu)는 '생명체', 파티(pati)는 '존엄한 존재'라는 뜻이다. 입구에서 걸어 들어가니 왼쪽으로 강이 보인다. 강가에는 양쪽으로 예
필자 주> 산에서 내려와서 카트만두 시내 유적지 등을 이틀에 걸쳐 둘러봤는데, 특히 인상 깊었던 불교사원인 '샤와얌부나트 사원',힌두교사원과 화장장이 있는 '파슈파티나트 사원',과거의 영화와 현재가 공존하고 있는 '박파푸르 중세도시' 등을 중심으로 주마간산격으로 기록해본다. 강진 곰파에서 헬기를 타고 카트만두로 돌아와서 호텔에 짐을 풀어놓고 일주일만에 샤워로 묵은 때를 씻어내니 몸이 날아갈 듯 한결 가볍다. 늦은 점심식사를 마친 대원들은 시내를 가로질러 사원 입구에 도착하여 입장료를 지불하
랑탕 마을과 함께 랑탕국립공원의 중심지역이라 할 수 있는 강진 곰파에서 이틀 밤을 보낸다. 전화나 전기 등 문명의 상징들이 있기는 하지만 우리 수준에는 훨씬 못 미치는 정도라서 없는 셈이나 마찬가지다. 저녁식사를 끝내고 나니 달리 할 일이 없다. 고산병의 우려 때문에 대원들이 모여서 함께 술잔을 주고받으면서 대화를 나눌 형편이 못 된다. 방으로 돌아와서 잠자리에 들었지만 쉽게 잠이 오질 않아 뒤척인다. 유리창 밖을 내다보니 어두운 밤하늘에 둥근 달과 초롱초롱한 별들이 유난히도 반짝이고 있다. 엿새째 아침이
트레킹의 목적지인 강진 곰파(KYANGJIN GUMBA)라는 마을이 자라잡고 있는 곳은 해발 3,870m로, 이 높이는 남한에서 제일 높은 한라산보다 두 배 정도 높은 곳이다. 랑탕국립공원의 계곡을 따라 사흘동안 올라오면서 만난 여러 마을 중에서 제일 큰 마을이다. 미물도 살기 힘든 깊은 산속 골짜기의 척박한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는 따망족(Tamang - 네팔 동부와 부탄, 티베트, 인도 동북부에 거주하는 민족)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어떤 연유로 이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았을까? 원래는 인도에 거주했었는데, 자신들을 정복하려
지난해 ‘완도 상왕산 산이름 찾기 추진위원회’가 문화원, 향토사학계, 행정, 기관단체, 산림조합, 언론계가 협력해 구성됐다. 그동안 본 위원회의 활동을 중심으로 위원들의 주요 의견을 청취해 본다.완도문화원에서는 완도신문과 함께, 한 사람만의 일방적인 주장을 펼쳐 이를 관철시키는 수직적 문화가 아닌 각계의 다양한 목소리를 듣는 수평적 토론문화를 이끌어, 이를 공론화 과정을 통해 정책과 공의(公義)를 만들어 보자는 취지에서 본 위원회를 구성하게 됐습니다. 의 위원들은 다양한 의견들
둘째날 아침 작은 버스를 타고 호텔을 출발하여 미세먼지가 뿌옇게 낀 도로를 달린다. 세르파 로싼이 험한 산길을 가기 때문에 버스가 작아졌다고 알려준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카트만두 거리는 차와 오토바이가 한데 뒤엉킨 무질서한 모습이다. 시내를 빠져나온 후 구불구불한 내리막길로 들어서면서 우리가 오지로 들어가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잠시 차창 밖으로 눈으로 돌리니 멀리 하얀 설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안나푸르나(8,091m로 세계 10위 봉우리)•자네트(genet - 다섯 봉우리)와 ‘랑탕 리룽’이라고 한다.
이른 새벽 삼 년만에 다시 카고백을 꾸리게 되니 설레임으로 심쿵(심장이 쿵할 정도로 놀람)하다. 지금까지는 주로 중국 동티벳 지역의 오지와 고산지역을 트레킹을 했었는데, 이번에는 8천 미터 이상의 고봉이 8곳이나 있어 ‘세계의 지붕’이라고 불리는 히말라야의 품에 안기게 된다.새벽공기를 가르고 강진을 거쳐 광주까지 이동한 후 광주에서 리무진버스를 타고 인천공항에서 내렸다. 공항에는 원정을 함께 할 대원들은 이미 도착해서 마지막으로 도착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수화물 탁송과 티켓팅을 마치고 출국장으로 들어서니 이제 떠나는구나 하는 마
이번 청산도 산행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종주산행이다. 최고봉인 매봉산을 오르지 않고 이 코스를 택한 것은 여러 봉우리들을 거쳐 가며 섬 안의 이곳저곳을 조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행자와 함께 도청항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신흥리까지 이동했다. 정류장에서 내려 찻길을 따라 진산리 방향으로 약 1㎞쯤 걸어가니 왼쪽으로 이정표가 세워진 들머리가 있다. 이곳 신흥리 보리마당에서 대봉산, 대성산, 대선산, 고성산을 거쳐 도로를 가로 질러 보적산까지 이어지는 코스의 거리는 약 10㎞ 정도다.완만한 경사를 따라 천천히 30분쯤 오르니 널
완도군은 군 소재지가 있는 완도를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으로 섬들이 나뉘어져 있는데, 유독 청산도는 남쪽으로 약 19㎞ 거리에 홀로 떨어져 있다. 청산도로 가는 뱃길은 호수처럼 잔잔한 내만에 있는 다른 섬들과는 달리 태평양으로 향하는 큰 바다의 길목에 떠있어 몰려오는 폭풍을 온몸으로 막아내고 있다.섬의 유래를 보면 한때 신선들이 살았다는 뜻으로 ‘선산(仙山)’, ‘선원(仙源)’이라 불렸다. 신라시대부터 많은 주민이 살았다는 것이 여러 가지 정황으로 추측되나 구전에 의한 것이며 관련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고려 때는 탐진현(현 강진군
백운산 산행은 면 소재지인 서성리에서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백운산의 산세는 섬 중앙에 우뚝 솟아올라 섬의 전체로 착각이 들 정도이고 비교적 급경사를 이루고 있다고 한다.마을 뒷쪽의 등산로 입구에서 산행준비를 마치고 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이정표의 거리는 정상인 백운봉까지는 2.0㎞, 산 중턱에 있는 학서암 입구까지는 1.4㎞로 비교적 짧은 거리다.들머리에서 임도를 만나는 지점까지 0.2㎞의 오르막길은 나무계단으로 비교적 잘 정비되어 있었다. 7~8분 정도 오르니 서성리에서 용출리와 금곡리로 이어지고, 중간에 학서암으로 갈라지는 임도
여러 해 전부터 올라보고 싶었지만 가는 길이 여의치 않아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는데, 마침내 기회가 왔다. 설날 다음날 아침 완도항 여객터미널에서 아침에 출발하여 생일도 용출항에 도착하는 섬사랑 5호를 타고 섬에 발을 디뎠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이 섬을 다시 밟은 지가 1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생일도에 들어오는 방법은 몇 가지 길이 있다. 완도읍에서 올 경우 완도항을 출항하는 배를 이용하면 시간을 절약하고 이동에 따른 번거러움을 덜 수 있다. 완도읍 외 육지지역에서는 강진 마량에서 고금도로 이어지는 고금대교를 거쳐, 고금도와 조약도
삼문산 이름의 유래를 “옛날 이 산 주능선 동쪽 분지인 삼개문(일명 삼감안)에서 땔감으로 쓰는 초나무나 풀이 많았다. 이것을 베어 지게에 메고 서쪽 천동 나루 방면으로 넘어오는 길이 세 갈래가 있는데, 망봉과 등거산 사이에 있는 움먹재, 망봉과 장룡산 사이의 파래밭재, 그리고 큰새밭재가 그것이다. 세 고개를 세 문(門)으로 보고 삼문산이라고 지은 것이다.”라고 ‘전남의 명산’(전라남도, 1999)이 소개하고 있다.삼문산의 주요 봉우리는 정상인 망봉(397m)과 장용산(356m), 등거산 토끼봉(376m) 등이 있고, 건너편 당목리와
섬 안에 자라는 자생 약초가 129종으로 알려진 조약도(助藥島, 약산면)의 중심에는 삼문산이 있다. 삼문산은 해발 높이가 399미터에 불과한 낮은 산이지만 다도해 조망이 뛰어난 산이다. 이 산은 방목하는 흑염소와 자생하는 삼지구엽초(음양곽)가 특산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이번에 조약도로 가는 길과 섬의 특산물 등을 소개하고, 다음 번에 삼문산 등산로를 따라가면서 산에서 만난 모습들을 살펴본다.섬 아닌 섬 조약도를 찻길로 가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군청 소재지인 완도읍에서 가는 방법과 광주나 목포·순천 등 타 지역에서 접근하는
가학산 산행은 가학리에서 미라리로 가는 길목의 물바위골 주차장에서 시작하여 목재데크 계단을 따라 쉬엄쉬엄 15분쯤 오르면 억새가 무성한 잔디밭 쉼터가 나온다. 옛날 소나 말을 방목했던 곳이라 ‘마장터’라고 부른다. 마장터의 억새밭을 지나면 등산객들이 편히 쉴 수 있도록 파고라와 벤치가 설치되어 있는 ‘잔디밭 쉼터’를 만나게 된다. 이곳에서 왼쪽으로 10분쯤 가면 바위에 귀를 대고 소리를 들으면 졸졸졸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고 해서 ‘물바위’라고 부르는 바위가 있는 ‘물바위골’이다.마장터 쉼터에서 구불구불 이어지는 너덜지대 등산로를
소안도는 완도에서 서남쪽으로 17.8㎞ 떨어진 섬으로 노화도, 보길도와 이웃하고 있다. 기후가 온화하고 지형이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장고를 닮았고 경지보다는 산지가 많으며, 주민들의 주업은 수산업이다. 8~9월이면 다른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노랑무궁화(황근)가 자생하고 있다.다도해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소안도는 28.7㎢의 작은 섬으로 본도를 포함한 4개의 유인도와 12개의 무인도로 형성된 다도해 지역의 청정해역이다.소안도는 원래 남쪽과 북쪽의 2개의 섬이었으나 너비 500m, 길이 1.3㎞ 정도 되는 사주로 연결되면서 하나의 섬이
신지도 상산은 완도항 건너편에 있어 완도읍 시가지를 마주하고, 명사십리 해수욕장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으며, 바다 건너 고금도를 건너다 볼 수 있는 주변 조망이 좋은 산이다. 정상(324.1미터 높이)까지 이어지는 등산로는 약간의 오르막이 있지만 길지 않아서 쉽게 오를 수 있다.명사십리 해수욕장으로 들어가는 진입로를 따라 가다가 오른쪽 산길로 이어지는 찻길을 올라가면(900미터) 왼쪽으로 김씨 문중 선산이 보이는데, 등산로 들머리는 그 반대편 이정표가 세워진 곳에서 시작한다. 군내버스를 타면 해수욕장 입구에서 내려 영주암 방향으
(1001호에서 이어짐)그리 급하지 않은 경사를 따라 오르다보면 광대봉(310.5미터)이 나오는데, 도상 거리는 들머리로부터 2.5㎞ 정도 되는 지점이다. 이 지점에 올라서서 오른쪽으로 보면 발 아래로 월송리가 자리잡고 있고, 간척지를 건너 통리․중리해수욕장과 우암 송시열 선생이 바위에 글을 새긴 ‘글씐바위’가 있는 백도리와 바다 건너 소안도가 차례로 다가선다. 광대봉에서 큰길재까지는 약 1.4㎞ 거리의 완만한 내리막길이다.부용리와 예송리를 연결하는 큰길재는 옛날 교통이 발달하지 않았을 때 지역 주민들이 이용했던 곳으로,
어부사시사로 국문학사에 한 획을 그은 조선시대의 고산 윤선도 선생이 제주도로 가는 길에 풍랑을 만나 배를 섬에 대고 수려한 산봉우리를 바라보고 배에서 내려 격자봉에 올랐고, “하늘이 나를 기다린 것이니 이곳에 머무는 것이 족하다”면서 부용동(芙蓉洞)이라 이름 짓고 그대로 정착했다고 알려져 있다.자연경관이 빼어난 보길도에는 섬의 동북쪽에서 서남쪽으로 이어지는 격자봉[(格紫峰)/적자봉(赤紫峰)] 능선이 있는데, 육지 기준으로는 야트막한 산이지만 바다와 접한 섬에 있는 산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결코 만만하게 볼만한 낮은 산이 아니다. 또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