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12일 국회에서는 쇠퇴하는 항구와 어촌이 점차 늘어가고 있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하여 국회 문화관관광산업연구포럼(대표 손혜원 국회의원)이 주최한 '항구가 살아난다 청년이 돌아온다'라는 슬로건으로 『항구재생, 어촌재생 정책토론회』가 많은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필자는 여건이 여의치 않아 토론회에 직접 참석하지는 못했지만, 행사진행사항을 유튜브를 통해 실시간으로 시청했고, 행가가 끝난 후 의원사무실을 통해 유럽 5개 도시의 항만재생사례를 소개한 『항구가 살아난다』와 정책토론회에서 발표된 발제자료를 모아
윗목 모서리에 걸린 등잔대에는 초꼬지불이 켜 있다. 꼬마가 그 옆에 서 있고, 할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동생을 안은 어머니가 꼬마를 쳐다보며 앉았다. 평소와 달리 상에는 꽁보리밥 대신 흰 쌀밥이 놓였고 반찬도 너덧 가지나 된다. 초저녁에 상이 걸게 차려졌으니 제사는 아닌 듯하다.“아들, 얼른 노래 한 자리 해 보니라.”아랫목에 앉은 아버지가 꼬마를 재촉한다.무슨 노래를 부를까. 귀 너머로 배운 ‘학교종’이나 ‘짝짜꿍’ 같은 노래가 있지만 그것들에서는 왠지 젖내가 난다. 그런 시시한 것들 말고 좀 세련된 것을 부르고 싶다. 두어 숨을
“동영상 속 인물이 김학의임이 확인되면, ‘성폭력(특수강간)’이 성립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분들이 꽤 있는 것 같습니다.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서 김학의의 특수강간을 주장하는 경찰도 동영상은 ‘범죄의 직접 증거’라기보다는 ‘김학의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하는 자료로서의 가치가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이제는 검찰수사단이 수사결과 발표를 통해 동영상 속 인물에 대한 판단, 이전 수사과정에서 특정하여 공개하지 못한 이유 등을 밝혀야 할 것과 같고 그래야 국민이 갖고 있는 의혹이 해소될 것으로 보입니다.”현직 검사와 친하게 지내면 이후
군대 한 달 고참 배 병장이 사법시험 준비한다면서 여름 방학 때 고시촌으로 올라간다고 하길래, 나도 고시공부 한 번 해보자고 하며 덩달아 신림동으로 갔습니다.법학 개념은 물론이고 책에 나온 단어들 마다 생소했습니다. 지금처럼 포털사이트를 통해 검색을 하던 시절이 아니었고 ‘서서(스위스)’, ‘오지리(오스트리아)’ 이런 단어는 법률용어사전에도 나오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배 병장은 친절히 가르쳐 주었습니다.한편, 자기 때문에 제가 고시공부를 한 것으로 생각해서였는지, 늘 저를 걱정하면서 “박 병장, 집에 내려가야지”하며 고시공부를 그
둘러보면 몹시도 우거진 들이며 산이다. 우거지다 못해 금방이라도 녹음으로 찢어질 듯 싶다. 길을 벗어나면 한 발 내어 디딜 곳도 없다. 지금쯤은 벼가 자라고 고구마순이 넝쿨져 있어야 하지만, 산 가까운 밭은 칡넝쿨이 점령했고, 저기 무살논들은 갈대로 무더기졌다. 나무를 해 때고 꼴을 베느라 산이고 들이고 빗자루로 쓴 듯 했던 때를 생각하면, 이건 해도 너무한 것이다. 그 단정하던 산천이 이리도 무질서하게 바뀌는 게 한 세대면 족하다는 것 아닌가. 그런데 저 무성한 것들은 중정도 짐작도 없는 것이라서, 내가 지금 서 있는 이곳도 산소
함석헌 선생이 ‘해방은 도둑같이 뜻밖에 찾아 왔다’고 했다. 우리 민족의 힘으로 이뤄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1945년 8월 15일. 일왕 히로히토의 목소리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온다. 제2차 세계대전은 끝났지만 같은 때 새로운 냉전체제가 시작된다. 제국주의로 짓밟힌 작은 나라들이 이젠 미국. 소련의 냉전체제에 휩싸인다. 그토록 바라던 해방이 되었지만, 일제강점기를 접고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려는 우리민족에게 황당한 일들이 벌어진다.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카이로, 포츠담, 얄타에서 전후 처리안들을 논의한다. 한국이 독립국임을 국제사회
김성재 사건에 대해 법원이 방송금지가처분을 받아들였습니다. 기획의도의 진정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본 것 같은데요. 무죄판결을 받은 당사자 측의 입장만을 지나치게 고려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당시 수사 및 재판에 대한 문제지적은 무죄판결을 받은 당사자에 대한 문제제기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법원은 이러한 이유로 ‘무죄판결을 받은’ 당사자의 인권을 고려한 듯합니다. 재심으로 다시 다툴 수 있는 유죄 확정판결과 달리 현행법상 다툴 방법이 없는 무죄 확정판결에 대한 비판이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확정판결을 받은 당사자의 법적안정성을 고려
‘한일간의 무역 전쟁’, ‘악화된 한일 관계’. ‘날로 악화로 치닫는 한일관계’요즘 최대의 뉴스는 떠오른 일본의 경제 보복으로 촉발된 우리나라와 일본 사이의 긴장과 대립을 보여주고 있다. 양국간의 지도자들의 강경한 발언과 조치로 해결보다는 갈등과 대립으로 가고 있다. 어쩌면 각국의 이해관계와 정치적인 이유가 깔려있고, 나름의 계산된 전략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와 일본의 관계는 ‘가깝고도 먼나라’로 상징되는 것처럼, 불가근 불가원이다. 역사 이래로 우리와 일본은 대립과 충돌, 그리고 교류와 협력이 이어져왔다. 그것이 양국 간에
사람은 부모의 자식으로 나서 살아간다. 그러니 부모의 것들이 자식들에게 대물림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대부분은 부모의 자식이 되고 또 자식의 부모가 된다. 하지만 예외적인 경우도 있는 것이어서, 부모의 자식이 아닌 존재가 생겨나기도 하고, 반대로 자식의 부모가 아닌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좋은 경우든 나쁜 경우든 ‘그 부모의 자식이 아닌 자식’을 우리는 보게 되는 것이다.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는 것이 일반적인 부모의 소망일 것이다. 이때 ‘잘된다’는 것에는 여러 의미가 담길 수 있겠지만, 그래도 그중 가장 먼저는 ‘사람답
만약~했더라면, 물론 ~했더라면 좋아졌을 수도 있다. 역사는 차갑게 가정을 짓밟는다. 좋거나 나쁘거나 인류는 돌이킬 수 없는 많은 선택을 했다. 나도 선택한다. 살면서 수많은 선택으로 여기까지 왔다. 앞으로도 많은 선택을 해야 한다. 하루에도 몇 번 씩 선택해야 하는 일, 요즘 들어 선택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가뜩이나 소심한 성격에... 하챦은 일에도 머뭇거린다. 할까 말까 이럴까 저럴까 선택하려는 순간, 아주 많이 주저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고민만 한다. 중요하건 안 중요하건 간에 몸에 베인 결정장애를 보며 벗들은 내게
다분히 고의적이었다.3년 전 오늘, 김정호 대표와는 이미 두 번의 약속을 어겼던터라.두 번이나 어겼으면 더 이상, 그쪽에는 관심이 없다는 이쪽의 상황을 잘 전달했으리라 생각했는데, 3번째 약속이 잡혔다. 웬만큼 힘들어야지, 이 길이.대강대강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대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 않는가!아기를 낳는 일이 따로 없다. 한 주의 신문이 나온다는 건, 새 생명이 탄생하는 일이다. 그래서 딱 ‘지랄 염병이다’이 절로 나오는 길이기도.그런데도 그 길을 걷는 사람들. 그 길을 걸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김정호 대표는 그 길을
이기적입니다. 지금의 제 고민과 고인의 삶을 연결시켜보려는 시도 말입니다. 이희호 여사님의 명복을 빌며 정두언 전 의원의 칼럼(‘다시 DJ를 생각한다’)을 인용합니다. “김 전 대통령의 국민화합 정치는 그가 남긴 또 하나의 커다란 유산이다. 김 전 대통령은 취임 이후 정적에 대한 보복의 칼을 휘두르지 않았다. 국민화합을 제일의 국정지표로 제시하고 반대파들에게 관용의 자세를 취했다.” 문재인 정부가 보복의 칼을 휘두르고 있다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과거사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과 태도를 지적하고자 함에 있습니다. ‘적개심’ 이게 지나치
완도수목원은 2,033ha 면적의국내 유일의 난대수목원으로 필자는 40여 년간 전남도에서 재직하다 퇴임한 지 16년이 되었고 그간 공직생활 중 14년간 산림부서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 완도수목원은 2,033ha 면적의 국내 유일의 난대수목원으로 구역 면적의 70% 가량(1,400ha)이 붉가시나무, 구실잣밤, 황칠, 동백 등 난대상록활엽수림이 차지하는 국내 어디에도 없는 전형적인 난대림 지역이다. 국립수목원은 현재 경기도 포천에 있는 국립수목원과 경북 봉화군에 있는 백두대간국립수목원이 있으며, 전북 새만금수목원과 세종시 수목원 두
신영복 선생님은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20년 20일 동안 옥살이를 하셨습니다. 선생님이 쓴 ‘담론’에 나온 감옥에서 만난 목수 이야기입니다.신영복 선생님은 목수가 땅바닥에 나무 꼬챙이로 아무렇게나 그린 집 그림을 보고 많이 놀랐다고 합니다. 집 그리는 순서 때문이었습니다. 그 목수는 주춧돌부터 시작해서 지붕을 맨 나중에 그렸습니다. 신영복 선생님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일하는 사람은 집 그리는 순서와 집 짓는 순서가 같구나. 그런데 책을 통해서 생각을 키워온 나는 지붕부터 그리고 있구나’신영복 선생님은 여기서 톨레랑스와 관용을
‘촌지를 받지 않는 교사’, ‘형편이 어려운 학생과 상담을 많이 하는 교사’, ‘지나치게 열심히 가르치려는 교사’, ‘반 학생들에게 자율성·창의성을 높이려 하는 교사’이 내용은 전교조 교사들을 판별하려던 교육부의 지침이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교사라면 당연히 실천해야 했던 것들이 오히려 문제 교사로 낙인찍고 탄압하려던 것으로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일이다.올해는 전교조가 창립된 지 30년이 되었다. 1989년 5월 28일 ‘민족, 민주, 인간화 교육’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정부의 탄압을 뚫고 결성되었다. 당시 노태우 정권은 전교조를 불
어찌 일어나 볼라고는 한다마는 딸싹을 못하것구나. 이대로 저세상으로 이냥 떠나가는 건 아닌지 몰르것다. 문턱을 넘어가 전화기라도 들었으믄 쓰것다마는 오므락딸싹을 못하것구나. 발목만밖에 안한 문턱이 큰재 꼭대이만이나 높은 것 같구나. 옆구리에 받치는 이 문턱을 기언질 못 넘어보고 영영 딴 세상으로 가버리는 건 아닌지 몰르것다.밥을 묵는데 뒷골이 쿡 쑤시든마는 맥이 탁 풀리더구나. 그래서는 그대로 거실바닥에 쓰러졌니라. 창수 속 저 어디에서 무언가가 끓어오르든마는 그것이 입으로 쏟아져 나오더구나. 밥 묵은 거 기알친지 알었는데 그것이
5월 1일, 자영업자인 나는 노동자인가? 일하다. 5일, 어린 조카들에게 용돈을 건네다. 8일, 하루종일 마음이 무겁다. 부모님이 보고 싶다. 석가탄신일, 스승의 날, 성년의 날, 부부의 날... 챙겨야 하는 기념일이 많은 오월이다. 그런데, 나만의 하루 하루도 결코 비켜갈 수 없는 오월의 기억들이 다시 가슴을 후비고 있다. 화려한 가운데 드리운 감정의 조각들이 분노와 슬픔으로 아린다. 다름 아닌 광주민중항쟁과 노무현대통령 서거일이다. 언젠가 5.18 묘역 참배길, 차안에선 박종화가 낭송하는 곽재구 시인의 ‘사평역에서’가 흐르고 있
응송, 박영희(1893-1990)는 김구 선생의 측근 이였으며, 불교계의 지도자 만해 한용운과는 3.1만세운동을 같이한 사람으로 완도읍 죽청리 사람이다.응송은 1893년(대한제국 고종29) 죽청리에서 박용건의 5남매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나 불교계에 입문하여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과 해방 후 청소년 교육에 뛰어들어 완도에 신교육과 계몽에 크게 기여 하였다. 그리고 1990년 1월10일 광주 소재 극락암에서 열반하여 대전국립묘지에 묻혔다. 97세의 노령으로 천수를 누린 사람이다.응송은 법명이고 영희는 속명이다. 17세 되던 해 평생의 정신
김 양식업으로 호황을 누리고 있었던 우리 지역은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미역의 인공양식을 시작하여 대량생산이 가능해졌고, 미역 원초를 염장미역으로 가공하여 일본에 수출함으로써 많은 외화를 벌어들였다. 이후 수 십 년 동안 미역양식업과 가공업 등 관련 산업은 주민들에게 많은 일자리를 마련해줬고, 이를 바탕으로 경제적으로 풍요롭게 해주는 우리 지역의 효자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하지만 미역이 주도했던 우리 지역의 해조류산업은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고 한계에 부딪쳐 침체기에 빠져들었고, 미역 관련 산업이 주춤하는 사이에 그 자리를
“우리의 일부가 불탔다”. 지난 4월 15일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이 화재로 지붕과 첨탑이 무너져 내리자,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한 말이다. 빅토르 위고의 ‘노트르담의 꼽추’로 인해 대성당은 그 이름만 들어도 무척 친근하게 느껴지는 곳이다. 이제 원래 모습은 더 이상 볼 수 없게 됐으니 안타깝기 그지없다.필자는 10년 전쯤 파리를 방문한 기회에 노트르담 성당을 구경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이미 로마에서 베드로 성당을 구경한 데다 일정도 빠듯해서 피리에서는 에펠탑 말고는 주로 미술관을 둘러 보았다. 유럽을 여행하다 보면 참 부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