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개미취 사이를 흔드는 푸른 하늘은 가을에 대한 그리움을 만들고 있다. 서로 마음의 손을 내밀며 비어있는 공간마다 풀벌레 노래로 가득 채우고 새벽 기차로 떠나는 나그네 마음을 아는 듯이 눈물겹게 아쉬워하고 있다. 자연은 있는 그대로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며 노래하는 숲으로 만든다. 어느 집안 어느 학교 출신이 아니라 자연 속에서 서로 다른 꽃들 속에 네가 꽃이 되면 내가 향기가 되어 맑은 하늘 아래 서로가 이 세상 주인공이 된다. 벌개미취도 낮은 자리에서 마음을 다지고 뜻을 길러 청청한 하늘과 맞닿을 맑은 그리움의 표상으로 피어있다.
특히 봄가을에 계절이 바뀜에 따라 몸이 아주 힘들다. 아마 기온 차가 심해서 그럴 수 있겠다.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바깥 모습만 변하는 게 아니라 마음의 속 뜰에서도 변한다. 그 변하는 모양이 아름다운 산과 숲이 되었음은 한다. 변화하는 색깔이 빛깔이 되고 향기로운 냄새가 되고 싶다. 타인이 봤을 때 “저 사람은 계절에 따라 변해”라는 말을 듣고 싶다. 봄이면 가장 부드러운 잎사귀에 귀여운 꽃을 달고 싶고 여름이면 가장 뜨거운 이마가 되고 싶고 가을이면 무게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진다. 오롯한 마음은 변함이 없어야 하지만 그 마음에
남도에서 참취나물을 취나물과 산나물이라고 부른다.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나오는 작은 연보라색 붓꽃이 필 때 참취나물의 색싹이 나온다.이 나물이 나올 때면 봄산이 점점 가깝게 다가와 연분홍 진달래가 내 마음을 설레게 하였는데 벌써 가을 산에 취나물 끝에 하얀 그리움이 아쉽게 산등성을 넘어가고 있다.봄에 진달래 꽃술을 담아 땅속에 묻어두었다가 가을 참꽃이 필 때 꺼내면 100일이 된다고 하였는데 그 날이 오늘이라며 당장 마시러 오라는 산꽃 향기 같은 아저씨. 그 마음이 진달래꽃이 다시 피어나는 것 같다. 참취꽃은 키는 1미터 쯤 되
논두렁에 한두 송이 피어 있는 쑥부쟁이에서 약간의 눈물이 보인다. 초록이 전혀 변하지 않을 것 같은 데 가을 색이 보일 듯하다. 밤 풀벌레의 소리 끝에서 그리운 사람을 더욱더 그립게 한다. 개울물 소리도 제법 깔끔하다. 그동안 모두 흩어져 있다가 가을이면 하나의 오감으로 함축된다. 한편 가을을 맞는 느낌은 매년 다르다. 생소하면서 낯설고 내 안에서 만남과 떠남이 교차하는 분위기. 그래서 가을에서는 가만히 앉아 있어도 시인이 된다. 개울가에 물봉숭아와 고마리 풀 그리고 궁궁이들이 함께 모여 있다. 종은 다를지라도 가을을 기다리는 마음
맑은 개울물 소리가 이른 아침에 꾀꼬리 노래의 배경이 되어 주고 있다. 온 산천은 신록으로 푸른 가슴을 열리게 한다. 여름날 신록의 들판은 그대로가 꽃이 된다.가만히 앉아 있어도 푸른 바람이 와서 가슴을 안아준다. 마음만 열고 있으면 초록 잎 꽃이 된다. 무심한 바람도 초록잎에서는 맑은 눈동자가 되고 마을 들길에서는 부드러운 원추리 꽃 흔들림으로 마음을 여리게 만들어 놓는다.문득 사위질빵 꽃내음이 소나기처럼 내려와 두텁게 적힌다면 인동초 꽃향기는 어느새 마음까지 적혀 눈먼 사랑이 되고 만다. 찔레꽃 향기는 지고 나면 무미의 향기의
노루오줌 꽃은 산 밑으로 내려오는 시원한 연못가에서 핀다.물을 좋아하는 습지 식물로 부처꽃 옆에서 피어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소중한 인연으로 삼고 있다. 누가 돌보지 않아도 그들은 풀 한 포기의 믿음으로 삶을 일구어가고 있다. 하늘의 문을 활짝 열려놓고 둥근 세상을 바라보며 공평하고 편견 없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 한다. 노루오줌은 하늘의 소리를 부드럽게 듣는 것과 땅의 움직임에 순종하는 것으로 이들이 처해 있는 주위와 때를 탓하지 않는다. 흙과 물에서 재생의 힘을 찾고 투명한 빛에서 지친 마음을 씻고자 한다.|이름 때문에 노루오줌꽃
미루나무 정자 기왓장에 뜨겁게 데우지 못하고 열사의 매미는 가슴에서부터 울어도 피를 토해내지는 못한다. 서역 하늘 황홀하게 떠있다가 익명의 바다로 가버린 나날들 또 하루가 서럽게 이별을 하고 있다. 아직 이슬이 마르지 않는 곳에서 녹두 콩알만 한 꽃을 줄줄이 달아 놓고 그늘이 있는 촉촉한 여백이 그들의 얼굴에 빗방울을 달아놓는다. 슬픔이 있다 하여 웃어버리지 못하고 기쁨이 있다 하여 울지 못하는 치열한 인간사와 야생화 이삭여뀌라고 다를 바 없다. 침묵이 가득한 숲속에서도 하나의 마을을 이루고 삶을 이야기하며 살아간다. 그 속에 이삭
살아있다는 의미는 전해 없었던 것이 오늘은 있고 풍요롭게 경험했던 것이 오늘은 없다. 없음과 있음을 섬세하게 체득하는 자만이 오늘을 생생하게 사는 방법인 줄도 모른다. 우리는 지금 어느 길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가 중요하지 않다. 어제보다 부족함과 남음에 대해서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오늘의 행복감이 갈린다. 물론 본인의 의지에 따라 오늘의 결과가 나오면 좋겠지. 그런데 그것만이 좋은 것은 아니더라. 내 생각과 세상의 흐름 그리고 자연의 흐름이 한데 어우러져 결과가 나올 듯 그 무엇이 있다. 그것은 바로 판단하지 않는 데에 있다.
결코 물에 젖지 않는 가시연꽃. 꽃이 피고 열매 맺는 일에는 큰 물결에도 흔들리지 않고 그들만의 조용함을 물빛에 그려 넣는다. 생명이란 존재는 사랑 속에 꽃이 피고 수 년 간의 인고 끝에 핏줄기를 이어놓는 일은 그다지 대수롭지 않다. 아마 자신들만의 절규와 사랑의 법칙은 그 누구도 알 수 없기에 그들 스스로 존재하는 데에만 당연한 일이라 한다. 그러나 한 순간 꽃이 피고 지는 일은 아닐 것이다. 어느 한 순간 사랑이 와서 운명처럼 사라지는 일은 결코 아니라는 뜻이다. 모르는 타인들은 봤을 때 어느 날 갑자기 꽃으로 여겼을 것이다.
산길을 가면 느닷없이 나타나는 친구. 입으로 향기를 내어 주는 친구. 말이 없지만 서로의 존재를 확인시켜주는 친구. 좁은 산길을 걷다가 작은 풀꽃이 길을 멈추게 한다.나만의 시공간에서 시간을 흘려보낸다. 순간 멈춰버린 눈동자는 깊이를 알 수가 없지만 기억은 오래 간다. 그만큼 순수한 만남이기 때문이다. 세월이 흐르면 일상의 소소한 것들이 아름다워진다. 지난날 스쳐 지나갔던 사람들을 다시 만나고 싶어진다. 전에 알지도 못했던 풀꽃들을 집중해서 관찰한다. 산너머 뻐꾸기 울음소리가 초침을 움직이게 한다. 선선한 바람이 작은 꽃잎이 흔들린
길을 떠나지 않아도 우리의 삶은 그대로 가고 있다. 그 길 위에 있음과 없음을 이름 지어 가면서 풀숲 이슬방울에 속에 내 마음이 노래하듯 읊조린다. 내 등 뒤에도 길이 있다. 내 인생의 절반쯤은 절벽에서도 초원에서도 아름다웠다. 그러나 알 수 없는 나의 뒤 보습은 어떤 모습일까. 딱딱하게 굳어버린 뒤 모습이 살아 움직인다. 그러나 실재가 보이지 않는다. 내 앞에 길은 영롱한 별빛이 기다리고 있고 물기 머문 푸른 길이 있다. 평평한 바닥에서도 가파른 절벽에서도 내 앞에선 선악을 가르는 운명 같은 영혼이 있다. 그런데 언제나 한 몸을
아무리 작은 꽃이라 하여도 하나의 꽃이 되기 위해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우선 지구의 중력을 견뎌내야 한다. 그리고 달의 인력을 잘 적응해야 한다. 태양빛은 무지개 색깔에 볼 수 있듯이 색깔마다 자기 역할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아침, 저녁, 계절 태양빛은 다르다. 우리 몸엔 느끼지 에너지를 식물은 감지하고 있다. 한 낮에 식물들은 적색강을 좋아한다. 그러나 나무 밑에 있는 식물들은 원적색강을 더 원한다. 식물들은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지만 필사적으로 생존법을 바꾼다. 시간과 공간 그리고 비밀스러운 에너지가 정확하게 오고 가야 한다
산에 꽃들이 내 안에 한참 들어와 있을 땐 내 나이가 한참 흘렀다. 나이가 들기 전에 산에 꽃들이 그렇게 멀리 있더니만 지금은 내 안에 들어와 있다. 여기저기 꽃들이 많이 있기보다는 간간이 샘물이 보이듯 그 옆에 피어 있으면 행복하다. 내 몸에 필요 이상 걸쳐 입기보다는 최소한 것들로 입으면 내 마음에 편한 옷이 된다. 산에 꽃들과 대면하는 시간이 그렇게 아름다움울 수가 있을까. 그것이 오래된 나이가 가르쳐 준 즐거움이다. 산에 꽃은 안개비에 얼굴 젖어도 눈물은 향기롭다. 정결한 샘물도 산나리꽃 속에서 붉은 물이 되고 싶다. 비탈진
무작정 길 떠난 사람도 붉은 꽃 옆에선 그냥 떠나지 못한다.한 번쯤 뒤돌아보는 사람아. 난 그 사람을 진정 꽃으로 보지 않는 것은 여린 마음에 붉은 심장이 있기에 꽃같이 보인다. 인정이 있는 곳에 심장이 있고 얼굴이 있기에 꽃을 피우는 것이다.마음을 다해 꽃을 피우는 일은 눈물을 가득 채우는 데에 있다. 마음이 먼저, 눈물이 먼저, 붉은 심장이 먼저 있어야 붉은 선홍빛 그리움의 꽃이 터지고 만다. 그냥 지나치지 못한 것은 아직 피지 못한 꽃씨가 있다. 그대가 알지 못한 무한한 세계를 향해 길 떠난다. 접시꽃은 연대하지 않아도 사회가
어느 산길에서 너를 만났는지도 모르나 여기까지 왔느냐. 세월이 더 가서 만났어도 너는 아직 나의 운명이었을 것인데 너무도 사랑할 것이 많아 과거에도 미래에도 만나는 것이 많아지는 구나. 산가막살나무꽃이 필 때 들에는 노랑 씀바귀 꽃과 노랑 뽀리뱅이 꽃이 한참 손을 잡고 있다.산에는 땅비살이꽃과 꿀풀이 얼굴을 맞대고 있다. 산가막살나무 꽃과 병꽃나무 꽃이 산길에서 마음을 다해 피어있다. 5월에 논밭에서나 산에서나 봄에 피는 꽃들이 마지막 힘을 다해 피어 있다. 산가막살나무는 약간 높고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면 하얗게 넓적한 얼굴을 내민
작은 바람결에도 흔들리는 노린재나무 꽃. 훌쩍 지나가는 산바람에도 눈물이 글썽이는 산 씀바귀. 하얗게 눈물 흘리던 날 이름 없는 푸른 하늘이 와서 너의 푸른 잎사귀를 만지고 있구나.눈물 많은 시절이 가고 그 속에 시련이 있을지언정 지나가 버린 것들은 모두 다 아름답더라.산 속 새벽어둠의 장막을 거두어들이는 이들은 산새들이다. 5월 끝자락에 나뭇잎들은 보드랍게 바람을 감싸고 있고 알을 품은 암컷의 광경을 수컷은 고운 노래로 또한 알을 쓰다듬고 있다. 이렇게 동식물이 생동하는 가운데 노린재나무 꽃은 하얀 솜털처럼 산에서 있는 모든 것들
메꽃으로 핀다. 찔레꽃은 찔레꽃으로 핀다. 으름 꽃은 으름 꽃으로 핀다. 메꽃에서 으름 꽃이 없나니 마음 착하다고 같은 꽃은 없느니라. 가난한 마음에 피는 선한 꽃도 강물로 가는 길이 다르고 꽃피는 눈물색도 바람 따라 서로 다른 향기를 지녔어라. 연보랏빛 꽃잎으로 그대 잠든 하늘가에서 마음을 다해 꽃이 되었다.사랑이여 가까이 오지 말라 멀리서 아득하게 마음의 향기만 내어 줘라. 차마 빈손으로 오는 그리움도 삶은 선하게 서독 되나니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는 또 다른 사랑 없어도 가장 맑은 사랑이 옆에 있다. 별이 지도록 으름 꽃도
어느 곳에서도 개망초 피어 있으면 쓸쓸한 사람이다. 쓸쓸한 사람이 노란 애기똥풀 머리에 이고 걸어갈 들길이 있다. 쓸쓸한 들길에서는 아직 이름을 달아줄 풀꽃들이 있다. 초록색 낮은음으로 들려오는 밤나무 꽃향기는 너무도 오래된 삶의 이야기가 있다. 머나먼 들길에서 애기똥풀 피는 곳까지 오는 데에는 높은음자리표가 있다. 어느 곳에서도 쓸쓸한 사람 옆에서는 쓸쓸하게 핀 들꽃들이 있다. 쓸쓸한 삶이 여울목에 이를 때 마음을 열고 눈물을 흘리고 싶을 때가 있다. 쓸쓸함과 기쁨이 들판 가운데 피어날 때 손수건만 한 생을 금빛 노을에 풀어 노래
따뜻하게 헤어졌다가 고요하게 만나는 날엔 병꽃나무가 있다. 나도 모르게 슬픔의 길을 걷다가 병꽃나무 꽃잎에 눈물을 묻고 있다. 찬 봄비에 노란 산수유 꽃이 피면 생강나무가 생각난다. 영춘화가 피게 되면 개나리꽃이 노랗게 물이 든다.진달래가 피고 나면 철쭉이 피고 나무에서는 연초록의 산벚꽃이 피기 시작한다. 야트막하게 핀 풀꽃부터 다양한 색깔을 지니게 되는 현악의 미는 봄맞이 산새 소리에 달려있다. 아주 낮게 아주 작은 싸리눈처럼 싸여있는 봄맞이꽃을 볼 요령이면 청아한 새소리로 하여금 노란 병꽃나무가 빨갛게 익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꽃잎이 없는 홀아비꽃대는 모든 것을 가슴으로 전한다. 보슬비 내리는 아침이면 머리에 젖지 않고 가슴으로 젖는 오롯한 삶이 온전한 가슴이 가슴으로 마음이 마음으로 흐르게 한다. 산에서 피는 꽃들은 한참 뒤에서야 다시 생각나게 하는 녀석들이 많다.그만큼 산에 피는 야생화들은 그리 화려하지 않으면서 긴 여운으로 피어 있는 꽃들이 많다. 홀아비꽃대도 역시 그런 꽃이다. 나뭇잎들을 통과하는 연하디 연한 햇빛이 한동안 머무는 곳에서 아주 단순하게 피어서 숲속의 여백도 조화롭게 만들어 놓고 있다. 약간 축축한 물의 기운이 있는 데에서 다른 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