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칠나무는 남해안이나 섬에서 자라는 상록활엽수다. 암꽃과 수꽃이 따로 있고 이맘때 흰색으로 핀다. 열매는 10월경에 검게 익는다. 보길도 정자리 키 15미터에 이르는 황칠나무 고목은 쳔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전통 칠은 옻나무 진액을 이용하는데, 부와 권력의 상징인 황금빛을 낼 수 있는 황칠은 황칠나무에서 얻어진다. 황칠은 음력 6월쯤 황칠나무 줄기에 칼로 금을 그어서 채취하는데 그 양이 매우 적다. 처음에는 우윳빛이지만 공기 중에서 산화되면 황색이 된다. 황칠을 하면 금빛을 띠며 투명하여 바탕의 나뭇결을 생생하게 보여준다.황칠에 대
어부사시사로 국문학사에 한 획을 그은 조선시대의 고산 윤선도 선생이 제주도로 가는 길에 풍랑을 만나 배를 섬에 대고 수려한 산봉우리를 바라보고 배에서 내려 격자봉에 올랐고, “하늘이 나를 기다린 것이니 이곳에 머무는 것이 족하다”면서 부용동(芙蓉洞)이라 이름 짓고 그대로 정착했다고 알려져 있다.자연경관이 빼어난 보길도에는 섬의 동북쪽에서 서남쪽으로 이어지는 격자봉[(格紫峰)/적자봉(赤紫峰)] 능선이 있는데, 육지 기준으로는 야트막한 산이지만 바다와 접한 섬에 있는 산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결코 만만하게 볼만한 낮은 산이 아니다. 또한
[미디어오늘 컨퍼런스] 혁신과 대안, 저널리즘의 미래.박정원 프레스바이플 편집위원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수 백건의 고소고발을 당하고도 살아남을 수 있는 군소 언론이 과연 존재할까? 거론하기도 부끄러운 일이지만 실제로 7년여에 걸쳐 153건이나 고소고발 당하고도 견딘 언론이 우리나라에 있다. 바로 이다.타블로이드판을 주간으로 발행하는 은 지난 9월말 창간 22돌을 맞았다. 신문발전기금까지 압류하는 치졸한 단체장 처사에 맞서면서도 현재까지 신문 발행은 물론 인터넷 홈페이지(http://www.wandonews.com)
▲중앙집권적 지방자치지방자치시대가 시작 된지도 올해로 21년이 됐다. 1991년 지방의회가 부활됐고 1995년 단체장 선거가 치러져 이젠 어엿한 성년이 된 지방자치지만 아직도 중앙집권적 지방자치라는 모순된 구조는 부인할 수가 없다. 자치정치는 중앙정치에 예속돼 있고 지역경제는 국가경제의 모순을 떠받드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이를 자치 혁신가로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해남출신 박상일 씨는 “자치행정은 중앙정부의 대리점이며 지역문화는 중앙문화의 아류, 지역교육은 중앙 인재풀을 채워주는 2군 캠프를 자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그는
그의 집 마당은 그리 넓지 않은 텃밭으로 이루어져 있다. 본채 지붕으로 올라가는 덩굴 중간에 아이 머리만 한 연초록 박이 달렸다. 작은 별채 옆에서 지붕 위로, 종려나무 줄기를 타고 박 덩굴이 하늘로 오른다. 집 안으로 들어서자 바가지탈 하나가 반긴다. 거실을 빙 둘러 온통 박공예 작품이 주렁주렁 걸렸다. 장식장 위나 벽에 걸린 각각의 박 안에 모두 뭔가 담겨 있다. 손잡이가 달린 뚜껑을 열자 여러 씨앗이 들었다. 다 쓰임새가 있다. 제법 큰 박 표면에 ‘쌀되박 보관통’ ‘1872년 동지중추부사이신 김동식 한정숙 고조할아버지가 쓰시
완도신문 창간 때를 회고하신다면?당시 지역신문이 전혀 없고 지방지와 중앙지만 있던 시절에 지금 고인이 된 이경국 전 대표가 지역 신문의 필요성을 역설했고 대다수 군민들이 지역의 오밀조밀한 삶의 얘기들을 담아내는 수단으로 지역신문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또 지역신문이 지역 사회에 활력을 이끌어주고 지역민들의 융화 단결과 의식고취에 보탬이 될 거라 생각했다.창간 당시 어떤 사회 활동을 했는가?청년회와 구도회 활동을 함께 했다. 지역 신문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할 거라 믿고 청년들이 적극 참여했으며 모금 운동도 하고 홍
대부분 식물이 피서 가는 초여름부터 장마철까지 황근(노랑 무궁화)은 땡볕 아래에서 연노랑 꽃을 피운다. 하루살이로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면 또 다른 꽃이 연이어 피고 진다. 꽃의 수도 많지 않아 보는 재미가 더 쏠쏠하다.갯부용 또는 갯아욱이라 불리는 우리 지역 특산 희귀종이다. 황근은 환경부가 멸종위기 2급 식물로 지정한 식물로 제주도에 주로 서식하지만 보길도, 소안도 등 남해안에도 자생지가 발견된다. 과거에 많았으나 사람들의 남획으로 거의 사라졌고 최근에 복원하려고 노력 중이다. 황근의 씨앗은 방수 기능이 있어 바다를 부유해
더 많은 발전 기대 할 터 그 누구보다도 완도신문을 사랑하는 독자입니다.매주 금요일 신문을 받아 보면서 이 많은 기사들을 어떻게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미치면 기자들이 존경스럽기도 합니다. 그동안 지역 언론의 역할을 다해 온 완도신문은 우리군 발전은 물론 군민들의 여론형성과 소통에 기여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완도신문이 지역의 문제점 지적과 함께 개선 대안도 함께 제시해 줄 수 있는 수준 높은 지역신문으로 거듭나길 기대합니다. 군민들이 공감하고 사랑하는 신문, 읽고 싶은 신문, 없어서
청노세 악단은 갈 곳 없고 반겨줄 사람 없어 외로운 소외된 계층에게 음악으로 위안을 제공하고 문화예술 정서를 확대하기 위해 만들어졌다.지난 2005년 농어민문화체육센터 지하 연습실에 모인 30여 명의 단원들을 시작으로 악단 청노세가 탄생했다. 김원욱 당시 완도군번영회장의 후원으로 음향기기를 준비하고 단원들 각자가 구입한 악기로 첫 연습을 시작했다고 한다.현재 악단의 연습실은 농공단지 관리 사무소 옆에 위치하고 있다. 지천명과 이순을 훌쩍 넘긴 단원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음악의 즐거움을 선물하기 위해 매주 일요일 오후에 함께 모여 연습
애기달맞이꽃은 바닷가 모래밭에서 큰 존재감 없이 살아간다. 가끔 만나는 여름 소나기나 짙은 해무 혹은 아침 이슬에 겨우 목을 축일 뿐이다. 태풍이나 사리 때 들이닥치는 바닷물에 절여지는 쓰라린 고통도 겪는다.요즘 길가에서 흔하게 보는 키도 얼굴도 큰 달맞이꽃은 남미가 고향인 다문화가족이다. 그런데 완도 바닷가 달맞이꽃은 키도 얼굴도 작아 귀엽고 애처롭기까지 하다. 이 애기달맞이꽃도 사실은 미국 출신이다.여름 땡볕 작렬하는 대낮에 살포시 꽃잎 포개 눈 감고 수행하다가 서늘한 밤에 환하게 피어 달빛 아래 은은한 향기를 내뿜어 곤충을 초
최근 걷기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길은 편안한 차림에 물 한 병 들고 가벼운 마음을 갖고 나설 수 있는 운동코스로 인식돼 가고 있다. 이에 전국의 많은 지자체에서도 지역 내 옛길들을 정비하고 다듬어서 걷기 좋은 길들로 만들고 걷기여행객들을 유치하는 추세다. 그렇다면 우리 완도군에는 걷기에 좋은 길들이 얼마만큼 있을까! 주말 가족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가벼운 산책 길부터, 파도소리와 함께하는 해안 길, 산새소리 들리는 깊숙한 산 길 등 우리지역 곳곳의 길들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올 여름 유난히 덥다. 이럴 때 일수
이웃 건물끼리 다닥다닥 정답게 붙어있는 군내리 주도길을 걷다보면 옛 정취를 담은 오래된 건물들과 수십 년은 그 자리를 지켰을 상점들이 보인다. 60년 넘게 이 길을 지키고 있는 생명농약사도 그 상점들 중 하나이다.한국전쟁 이후 모든 물자가 귀하던 시절 오정국, 임옥희 씨 부부는 당시 완도의 중심이었던 이곳에 생명약방을 시작했고 농약이 보급되기 시작하고부터는 농약도 같이 팔았다. 사람의 병은 약종사인 오정국 씨가 식물의 병은 임옥희 씨가 처방했었는데 지금은 사별 후 홀로 된 부인 임옥희(81) 씨가 생명농약사만 운영하고 있다.임 씨는
몸과 마음이 쉽게 지치는 계절, 잘 쉬는 것만큼 먹을거리도 중요하다. 진하게 내린 콩물에 국수를 말아 먹는 콩국수는 양질의 단백질과 비타민, 무기질 등이 풍부해 예부터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기는 여름 보양식이다.봄이- '콩국수 개시'란 표시를 보니 더위가 실감나요. 서리태콩국수는 색부터 다르네요.어르신- 검은콩에는 속이 노란 흑태, 녹색인 서리태, 쥐눈이콩이라 불리는 서목태 3종류가 있는데 서리태는 첫 서리 내릴 때 수확한다고 불리게 된 이름이지. 검은 껍질을 벗기고 콩물을 만들면 이렇게 녹색이 된단다.봄이- 고구려인들
무화과처럼 생겼는데 크기가 좀 작다. 열매 모양이 여인네 젖꼭지를 닮아 젖꼭지나무로 부른다. 줄기나 잎, 열매에서 나오는 하얀 점액이 젖처럼 보인다.천선과나무(天仙果)는 하늘의 선녀가 먹는 과일이다. 무화과나무속에 속하는 천선과도 꽃이 없다. 아니 더 정확히는 꽃받침과 꽃자루가 변형된 주머니 모양의 씨방 안에서 꽃이 숨어서 핀다. 보이지 않을 뿐이다. 무화과말벌이라는 작은 벌이 씨방으로 들어가 수정을 돕는다고 알려져 있다.먹어보면 무화과 맛이 나지만 단맛은 훨씬 덜해 밋밋할 정도다. 완숙해 물러진 열매에 벌, 나비, 풍뎅이 등 곤충
들머리 ⇄1.1㎞⇄ 갈림길(←소가용3.0㎞, 상황봉➡) ⇄1.7㎞⇄ 구 전경초소(←도암리, 구LPG충전소➡1.9㎞) ⇄1.4㎞⇄ 이정표(능선) ⇄0.9㎞⇄ 삼밭재(임도) ⇄0.5㎞⇄ 갈림길(←삼밭재, 상황봉➡) ⇄0.2㎞⇄ 상황봉 [5.8㎞] 소가용리에서 도암리로 넘어가는 야트막한 고갯길 오른쪽에 서있는 이정표에서부터 시작된다. 약간의 경사진
완도군에서 3번의 배를 갈아타야 닿을 수 있는 있는 금당도는 10개 마을에 15개의 무인도를 거느리고 있다. 동쪽으로는 부채 바위, 병풍바위, 스님바위, 상여바위, 소금강, 코끼리 바위, 거북바위가 해안을 따라 비경을 이루고 있으며 깨끗하고 고운 해변에서 즐기는 해수욕 또한 으뜸이다.천혜의 자연환경에 둘러싸여 있고 갯벌 섬 마을 정보센터가 있는 가학리는 금당도에서 가장 처음 개척된 마을이라 하여 개기리(開基里), 학 모양으로 마을의 형태가 생겼고 그 학이 멍에를 넘었다 하여 ‘멍넘어’라고도 불리다 지금의 가학리가 되었다.가학리는 어
처음 거길 찾은 때가 2010년 여름이다. 아담한 대문을 능소화 덩굴이 움켜쥐고 있었다. 여름 내내 145번지 그 집은 능소화 꽃대궐이었다. 바닥에는 늘 떨어진 꽃들이 포개져 있었다. 집안 마당은 또 얼마나 정갈했는지. 매년 도둑고양이처럼 거길 다녀갔다.지난주 간만에 거길 갔다. 대문은 사라지고 없고 무성하던 능소화도 보이지 않았다. 늙어 굵은 몸통이 기대 선 돌담에 능소화 꽃이 피어 있다. 태풍 때문에 그리 됐다고 한다. 돌아서는 길에 만난 꽃 주인 할머니는 꽃도둑을 기억했다. 꽃들도 할머니처럼 나를 기억할 것 같았다.꽃 모양은
요즘 군외면 갈문리 갯짝지 긴 방풍림은 온통 황금빛이다. 5미터가 훌쩍 넘는 키로 자라며 수백 미터에 이르는 모감주나무 방풍림을 노란 꽃들이 덮어 버렸다. 이곳 모감주나무 군락지는 천연기념물 428호로 지정된 곳이다.하늘을 향해 곧추선 긴 꽃대에 촘촘히 피어난 화려한 꽃들이 복날 더위에도 전혀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피어오른다. 남들이 서늘한 봄을 선호할 때 모감주나무는 보란 듯이 여름 더위에 정면으로 대든다. 또 꽃이 질 때는 비처럼 이파리와 바닥으로 떨어져 내린다.처음에 초록색이던 열매는 점차 갈색으로 변하더니 셋으로 갈라지고 그
군대 마치고 첫 발령 받은 고흥 학교에서 밤 사이 불이 났다. 처음 숙직 당번을 선 초임 교사가 아침에 일어나 보니 학교는 불에 타 없어졌고 그후 그의 인생은 많이 바뀌었다. 이듬해 전남도 교육청 징계위원회는 그를 완도로 보냈다. 그때 김영식 교수(50, 현재 남부대 무도경호학과)의 나이 27세였다.1993년 완도중학교 체육교사로 부임한 김 교수의 완도 생활이 그리 만만하지도 또 편하지도 않았다. 지역 사회와 학교 아이들과 자신을 위해 몸과 마음을 불사른 기간이었다. 울면서 왔지만 그때부터 그의 꿈을 향한 노력은 시작됐고 그런 그에
파도에 부대끼며 구르고 굴러 동그래진 갯돌이 등 맞대고 얼굴 맞대며 아홉 계단을 이루고 있는 정도리 구계등 해변에서 강판식(61)이장님과 만났다.강 이장은 태풍 볼라밴의 영향으로 구계등 갯돌이 많이 유실되긴 했지만 활모양의 해안선이 여전히 아름다운 해변으로 명승 제3호로 지정된 이유가 있다면서 마을 자랑을 먼저 했다.몇 년 전까지 정도리 어민들은 구계등 갯돌 위에서 그물을 손질하고 멸치 삶아 말리는 일도 했지만 지금은 공원 관리 차원에서 화흥포 마을 선창으로 옮겨 이 일들을 한단다. 이 때문에 어업에 종사하는 주민들의 불편이 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