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사라진 말이다. 좀 아쉽기는 하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이 없다’라는 말이다. 그토록 어려운 시대임에도 자식을 많이 낳았다.그 때문에 많은 일들이 벌어졌다. 당연한 얘기다. 가지가 많으면 바람에 부딪히게 마련이다. 그런데도 자식을 많이 낳았던 이유는 노동이 많이 필요했던 농경사회다. 우리 야생초 이름이 붙어진 시기는 이때쯤 아니였을까. 며느리밥풀, 며느리밑씻개, 며느리주머니 등 며느리란 이름이 많이 등장한다. 이번 주 야생화도 며느리배꼽인데 옛 사람들은 그토록 많은 말 중에 왜 며느리배꼽을 택했을까. 그 시대의 사
꽃의 어원은 ‘곶’이었다. 곶이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된소리로 변해 ‘꽃’으로 불리게 됐다고 한다. 그런데 꽃이라는 글자가 꽃처럼 생겼다. 마치 상형문자처럼 말이다.7월에 피는 사위질빵이 꽃도 꽃 글자처럼 생긴 모양이다. 가늘고 연한 꽃잎이 모여 그윽한 향기를 자아낸다. 꽃들도 자기들의 고유 이름이 있을 것이다. 자세히 보면 그들의 얼굴 모양이 다르고 향기도 약간씩 차이가 있다. 그렇다면 같을 꽃 이름 아래에서 서로 다른 이름을 부르고 싶다.그 첫 번째 만나는 꽃은 내가 제일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불러 주는 것이다. 그다음은 친구도
깊은 숲속에서 불현듯 나타난다. 이쯤 산속에서는 꽃이 없는 편의여서 문득 이 꽃을 보게 되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조용한 숲속에서 아무 말이 없이 피어있다. 가끔 뻐꾹새 노랫소리가 정적을 깨우기도 하지만 그 자리만큼은 오히려 고요함을 깊게 한다. 이들이 피어있는 숲에서는 조용함을 그 배경으로 하여 향기를 자아내고 있다. 작은 암자라도 찾은 듯이 마음이 차분해진다. 꽃이라면 진한 향기를 내어 뿜어야 자기에게 관심을 보일지 몰라도 하늘말나리는 그 자태가 향기이다. 산속 모든 고요함을 배경으로 그 가운데 한 여인이 있다면 선녀일 수도
어느 큰 나무 꼭대기에서 꽃이 피었다. 더 가까이 가 보니 능소화다. 많은 세월이 흐르면 나무 위에서도 꽃이 되는구나.우리의 삶도 이렇게 됐으면 좋겠다. 모든 꽃들이 그렇듯 빗속에 피는 꽃이 더 생동감이 있다. 기쁨의 눈물 속에서 웃는 얼굴은 어떤 꽃과 비교할 수 없다. 낯선 길을 가다가 비에 젖은 얼굴도 마찬가지다. 어느 곳에 있든지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일어나고 만다. 우리는 이런 일들이 계속 진행될 것이다. 특히 물과의 만남은 삶의 속도를 낮추거나 극적으로 높일 수 있다. 능소화 꽃잎과 빗방울이 만나면 그 순간만큼은 환희에 찬
바닷가 언덕 위에서 핀 노랑꽃. 누구를 간절히 기다리는 모습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원동력은 그리움과 아쉬움이다. 언덕 위에 노랑 원추리 한 두 그루는 마음을 설레게 한다.하루가 멀다 하고 만나고 헤어지는 일이다. 살아서든 죽어서든 헤어지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서 눈물을 감추고 일상처럼 살아간다. 오늘 하루 지탱할 수 있는 에너지의 양은 정해져 있다. 그런데 그 에너지와 연결된 마음의 양은 정해져 있지 않다. 각기 마음의 질량 따라 다르다. 이것은 바로 그리움의 정도의 차이라고 말하고 싶다.우리 몸속에 구성하는 단백질은 참
보리논에 물이 들어오면 논두렁에 빨갛게 익어가는 열매가 있다. 보리 딸기다. 지금에야 먹을 것이 많지만 그 옛날에는 풍족하지 못했다. 그래서 계절마다 먹거리를 찾았다. 4월에는 찔레꽃 순이 연할 때 그것을 꺾어 먹었고 5월은 산딸기 그리고 6월은 뽕나무 열매와 보리밭 두렁에서 열린 보리 딸기를 학교에서 집으로 오는 길에 따 먹었다. 논과 밭두렁에 제초 약을 많이 해서 한동안 시름하다가 요즘은 이 야생 열매가 많이 보인다.친환경 농법도 이유가 있지만 이걸 따 먹을 사람이 없다. 인구절벽이란 말을 많이 한다. 농촌 들판을 보면 그야말로
5~6월은 가시가 달린 꽃들이 많다. 찔레꽃, 장미꽃, 개쑥갓...완도의 산하는 노란 물결의 잔흔이 남아 있다.4월부터 양지꽃, 애기똥풀, 쓴바귀꽃, 새까맣게 탄 논두렁에서도 노란 씨앗들이 하늘로 펼쳐지는 민들레 그리고 아직 여물지 않은 보리밭 가에서는 노란 뽀리뱅이 이렇게 남도의 산야에는 모든 것을 내어 주었다. 들에 핀 꽃은 꽃으로 산에 나무는 푸른 하늘로 그 순한 물길은 가슴에 여울져 있다.이러면서 강물은 6월을 향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독물을 풀기 위해 보랏빛 눈물을 굳게 쥐고 있는 항갈퀴. 여린 봄날에는 차디찬 머리도
하늘말나리 꽃은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꽃이 하늘을 향하고 있다 하여 하늘말나리라고 부르고 우산말나리라고도 부른다.잎은 우산 살처럼 둘려나면서 원줄기에만 있다.잎이 1층으로 돌려나 있으면 말나리라는 이름이 붙는다.원형의 부채춤처럼 쫘악 펼친 잎이 줄기를 감싸고 있다.하늘말나리는 산속에서 별안간 나타난 야생화이다.그만큼 흔하지 않은 꽃으로 완도의 경우엔 바다와 인접한 산에 피어나 있는데, 신기리와 정도리 등 해안가에서 발견되고 있다.산길을 가다가 가끔 발견하는 이 꽃은 7월 초 부터 핀다.원줄기 끝과 바로 옆 줄기 끝에서 꽃을 달고
하양, 분홍, 노랑, 자주 봄꽃들이 앞 다투어 화려하게 피어난다. 그런데 사실 봄보다 일찍 양지바른 마당과 들녘을 차지한 친구들이 있다. 별꽃과 광대나물이 그들이다.너른 마당 지심 매던 금당도 출신 어매한티 이름을 물었다. ‘곰봄불리’와 ‘장구잽이’라는 답이 바로 나왔다. 종류도 참 다양한 별꽃은 곰부레, 곰봄부리, 곰봄불래 등 이름이 비슷하지만, 광대나물을 장구잽이라 부르는 것은 처음이다.고개를 곧추 세우고 작고 귀여운 주둥이로 지지배배 수다라도 떨 것 같은 모양인데 이름이 광대 중에서도 장구잽이로 더 구체적이다.미국 테네시 주에
이름에 완도가 들어간 식물 종은 완도호랑가시(Ilex xwandoensis)와 완도현호색(Corydalis wandoensis)뿐이다. 완도현호색은 이영로 박사가 지난 1998년에 완도에서 발견해 학계로 보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전남도 산림자원연구소 오찬진 박사에 따르면, “완도현호색은 주로 완도 바닷가 주변의 토질이 비옥한 곳에서 발견되며 세력이 좋아 일반 현호색보다 키가 크다”고 말했다. 또 꽃의 색깔과 잎의 특징 그리고 구근(뿌리)에 대해 설명했으나 일반인들이 그것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았다. 또 그의 설명을 근거로 완도현호색
완도의 겨울은 붉은 동백꽃만 피는 건 아니다. 낮에는 해변공원이 동백으로 붉게 물들고, 밤에도 형형색색 피어난 수많은 꽃들이 주민들의 마음을 포근하게 감싸준다. 그런데 해변공원 나무들의 실상을 알게 되면 한없이 미안해진다.해변공원 상록수도 낮에 광합성으로 에너지를 만든다. 그 과정에서 탄소를 들이마시고 산소를 내뱉는다. 밤 시간은 그 반대다. 지구에 생명이 살아 숨쉬는 동안 쉼없이 반복해 온 불변의 질서다.그러나 해변공원 나무들은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 설치한 물양장 밝은 가로등과 주변 상가에서 밝힌 불빛 때문에 밤 시간에도 쉼없이
추운 겨울 날 점심 무렵에 중학교 운동장 옆 계단에서 아이가 한 손에 동백꽃을 가득 올려놓고 꽁무니를 하나씩 입에 대고 빨더니 버린다. 바닥에 동백꽃이 벌써 여럿 굴러다닌다. 동백이 겨울에 꽃을 피우는 것이 마치 이 아이를 위한 것 같다.‘나무 박사’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는 동백이 겨울에 꽃 피는 이유를 동백나무 나름의 셈법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우리 나무의 세계,’ 김영사, 41쪽부터) 식물의 생애 중 꽃 피우기는 시기에 가장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또 주변 식물과의 치열한 경쟁도 필연적이다. 동백이 겨울에 꽃을 피우
고려 때 이규보가 ‘동국이상국집’에서 처음으로 동백꽃을 노래했다고 전한다. 조선 때 윤선도 역시 유배지 추자도에서 동백꽃을 노래했다.시인 서정주도 그의 시 '선운사 동구'에서 동백꽃을 노래했다. “선운사 고랑으로/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오히려 남았습디다/그것도 목이 쉬어 남았습디다.”가수 송창식은 ‘선운사’에서 동백꽃을 눈물나도록 슬프게 노래했다. ‘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바람불어 설운 날에 말이예요/동백꽃을 보신 적이 있나요/눈물처럼
키 작은 피라칸다는 정원이나 공원에 심는 상록관목으로 우리 야생화는 아니다. ‘불과 가시’(firethorn)라는 뜻의 그리스 말에서 유래했다(pyracantha). 피라칸사, 피라칸사스, 피라칸타 등도 틀린 호명은 아니다. 중국 서부가 원산으로 줄기에 가시가 있어 울타리로 안성마춤이다.꽃은 6월부터 흰색으로 피고, 9~10월 경부터 열매가 붉게 익어 겨우내 탐스럽게 달려있다. 더러 노란 열매도 보인다. 특히 붉은 열매 위로 소복이 눈 쌓여 있는 풍경은 그야말로 장관이다.피라칸다는 까치밥이 떨어져 먹이가 귀한 요즘 새들의 요긴한 먹
바위솔은 낡은 기와 지붕에 곧잘 뿌리 내린다. 그래서 사람들은 바위솔에게 와송(瓦松)이란 별명을 붙였다. 2012년 묘당도 충무사에 갔을 때 바위솔은 기와 담장에 꼿꼿이 자라고 있었는데 그후 불어닥친 ‘와송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자취를 감췄다. 그 어린 것들을 누가 가져갔을까?높고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지붕에서 꽃을 피운 바위솔은 참 예쁘다. 그런데 요즘 기와가 어디 흔한가? 사람들은 마을 당집을 오래 전에 양옥으로 개축했다. 구계등 할아버지당도, 화개리 당집도 신식으로 신장개업한지 오래다. 지금쯤 성업 중인지 궁금하다.기와가 없는
10년 넘게 완도 이곳저곳을 다니며 들꽃을 사진에 담아 왔지만 정작 벼꽃은 없다. 그래서 추수가 이미 끝난 지난 9일 텅 빈 화흥포 들녘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돌아다녔다. 베어진 벼 포기 사이로 벼이삭이 새로 돋아 나오고 있었지만, 벼꽃은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오후 느지막한 그 시간은 꽃을 볼 수 있는 때가 아니었던 것이다.벼꽃은 오전 10시에서 오후 2시 사이에 핀다. 두 쪽의 벼 껍질이 반으로 갈라지며 6개의 수술이 나오고 그 사이에 솜 같은 암술 1개가 있다. 꽃잎도 없고 꽃받침도 없는 불완전꽃이다. 바람이 불
이번에 개최된 가을축제인 ‘청정바다 가을빛 여행’ 프로그램으로 동망산, 서망산, 남망산 등산대회가 열렸다. 망남리 넘어가는 고개 끝에서 남망산으로 접어드는 초입에 산국이 만개했다. 무덤가에는 쑥부쟁이, 구절초도 수줍게 피었다. 키 작은 소나무와 덤불 사이로 드물게 핀 산부추와 함께 유독 돋보이는 보라색 꽃이 잔대이다.잔대는 종 모양 통꽃으로 초롱꽃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이다. 도라지꽃을 닮은 잔대를 우리는 어릴 적에 딱지(딱주)로 불렀고 새 순이 나는 봄이면 그 뿌리를 껍질 벗겨 먹었다. 더덕이나 도라지처럼 쓴맛이 난다.여행자 없는
강아지풀은 화본과에 속하는 한해살이풀로 8월 즈음에 꽃 핀다. 푸르던 이삭이 가을이면 황금색으로 변하면서 서서히 고개를 숙인다. 논밭 언덕이나 바닷가 모래나 자갈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아주 열심히 살아간다. 특별한 천적도 없어 보인다.이삭 모양이 개의 꼬리를 닮아 개꼬리풀, 즉 구미초(狗尾草)로 불린다. 일본과 중국에서는 개 대신에 이리에 비유하기도 했다(狼尾草).구석기 이전부터 온대 지역에서 널리 서식한 풀로 마치 키 작은 조(서숙)를 닮았다. 가뭄이나 흉년 때 강아지풀의 씨앗(종자)으로 죽을 끓여먹기도 해 구황식물이라는 명예도
방동사니는 벼를 수확하는 요즘 한창 꽃이 핀다. 논이나 밭둑, 풀밭 어디라도 자란다. 알방동사니(사진), 금방동사니, 참방동사니, 쇠방동사니, 방동사니대가리 등 종류도 많다.잡초라는 이유로 우리들 대부분이 그 존재를 모른다. 그런데 200여년 전에 조선의 왕이 친필로 그린 그림 속에 방동사니가 등장한다.18세기 후반에 개혁군주 정조가 그린 그림이 몇 점 전하는데 그 중 2점이 파초도와 국화도로 둘 다 보물이다. 국화도는 바위 틈으로 솟은 국화 세 줄기가 활짝 꽃을 피웠는데 그 주변에 등장한 조연이 다름 아닌 방동사니다.조선의 왕이
이름에 완도가 들어간 식물 종이 몇이나 될까. ‘완도현호색’(Corydalis wandoensis)과 ‘완도호랑가시’(Ilex xwandoensis)뿐이다. 그중 완도호랑가시는 호랑가시나무와 감탕나무의 자연 교잡종으로 1973년 완도에서 처음 발견돼 완도호랑가시라 명명됐다. 키는 5미터에 이르며 4~5월에 꽃이 피고, 9~10월에 빨갛게 열매가 익는다.완도호랑가시나무를 처음 발견하고 학계에 보고한 이는 미국 출신으로 한국에 귀화한 민병갈 선생(미국명 Carl Ferris Miller)으로 나중에 충남 태안에 천리포수목원을 세워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