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완도군에는 265개의 유무인도가 있다. 그 중에 가장 오지를 고르라면 누구든지 망설이지 않고 여서도를 말할 것이다. 여서도는 완도군의 조금만 섬이지만 큰 마음 먹지 않으면 정말 가기 어려운 섬으로, 완도사람이지만 평생 한 번 가보기도 어려운 섬이기도 하다.그곳은 또 비운의 삶을 살다간 천재시인 김만옥의 숨결이 숨 쉬고 있는 곳. 김만옥은 1946년 3월 6일 여서도에서 3대 독자로 태어났다. 어려서 아버지를 바다에서 여윈 김만옥은 어려운 환경에서도 홀어머니의 지극한 사랑과 헌신적인 뒷바라지로 1960년 완도중학교에 수석으로 입
출장을 떠났던 남편이 열차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을 언니와 남편 친구를 통해서 들은 루이즈는 절망적인 심정으로 자신의 방에 홀로 앉아 창밖을 통해 바라보는 풍경으로부터 마음속에서 서서히 일어나고 있는 무엇인가를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호흡이 가빠지고 심장 박동이 빨라진 그녀는 무언가 다가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것이 존재를 찾아주고 자신을 확인할 수 있게 해주는 무엇인 것 같았다. 그것과 마주하며 알아낼려고 애를 쓰고 있었지만 그녀의 마음은 작고 여린 하얀 두 손만큼 나약하기에 쉽게 찾아 낼 수가 없었다. 갑자기 그것과의 싸움을
이 지상에서 따뜻한 온기를 느낄 때가 봄이다. 봄은 굳어져가는 몸도 재생의 에너지로 싹을 돋게 한다. 생각을 다시 새롭게 하여 너를 보게 한다. 봄은 최초의 몸이다. 이것이 달라질 때 또 봄을 맞는다. 내 육신과 마음이 힘이 들 때 봄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때가 나를 힘들게 할 때도 있지만 때가 되면 새롭게 나를 찾아온다. 송곳니가 올 봄에 빠졌다. 입 안에서 한 움큼 없어진 듯하다. 때가 되니 내 육신에 떠난 이가 생기고 만다. 떠난 만큼 그 자리에 채워 넣으라는 뜻도 있다. 자식을 위해서 남을 위해서 그런 뜻도 있겠지만 자신이
당신이 무슨 일을 하든 상관이 없다. 당신이 또 어떤 직위를 가졌든 상관이 없다. 생명을 직접적으로 구하는 의사가 아니라도 상관없다.설령, 예수와 부처를 사랑하는 일마저 중요치 않을 수 있다.지금 당장, 누군가의 생명을 구하는 일에 주저하지 않는다면.언제부터였을까. 외국인을 외국인으로 다 똑같이 여기지 않고 따로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 외국인 노동자를 보면 괜히 피하고 부담스럽게 생각한 것이.우리도 그런 때가 있었다. 월남전에 나가 목숨을 걸고 달러를 벌어 들였다. 머나 먼 서독 땅에 가선 1,000미터가 넘는 깊은 땅굴에 들어가
심장이 약한 루이즈 멜러드에게 그녀의 남편, 브렌틀리가 죽었다는 소식을 어떻게 최대한 조심스럽게 전해야만 한다는 것을 조세핀과 리쳐스는 알고 있었다. "열차 사고가 났는데, 루이즈," 루이즈의 언니, 조세핀이 조용히 말을 꺼냈다. 루이즈 남편 친구인 리쳐스는 조세핀 옆에 함께 서 있었다.사고 소식은 리쳐스가 가지고 왔지만 조세핀이 떨리는 목소리로 두서없이 동생에게 전하기 시작했다."리쳐스...가 신문사에서...""사고소식을 접했는데....""루이즈...루이즈... 브렌틀리의 이름이 리스트에 있었데.""브렌틀리가.... 죽었다고 해,
'공춘화 해녀를 처음 본 순간 저 분이 해녀가 맞나? 다른 분이 나오신 건가? 해녀가 아닐 것 같은데?' 짧은 순간이었지만 많은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이유인즉, 지난해 슈트를 입은 모습을 본 적이 있어서다. 큰 키와 늘씬한 몸매 잡티 하나 없는 얼굴, 나이를 물어보니 70세란다.″머할라고 나를 이렇게 만날라고 해싸까 잉~″'전복 요리로 하도 유명하시니까 전복요리 이야기도 들어보고 물질하는 모습을 기록하고 생애사를 듣기 위해서죠'″이야기를 할라먼 책으로 몇 권 인디? 어찌게 다 들을라요″'그래도 조금만 들려주시죠'공춘화 해녀는 소안
지난 주에 이어 (주) 바다품애 정희진 대표의 이야기를 이어가면, 정 대표는 대학을 졸업하고 병원에서 첫 직장을 시작했다고 했다. 어느 날, 함께 일하던 동료가 묻기를, "희진아, 멸치 잡는 남자 한 번 만나 볼래?" 잠시 궁금증이 일어나면서 동료의 제안을 받아들였다고. 그렇게 만나게 된 사람이 남편될 사람이었고, 그 사람과의 만남은 인생을 바꾸게 되었다고 했다. 희진 씨는 아버지를 소띠 중 근면 성실의 대명사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남편도 아버지와 같은 소띠에 근면성실의 표본이었다고. 희진 씨는 자신이 숫자에 약한 것을 잘 알기 때
첫 인상이 좋으면 다 좋다.오경순 해녀가 딱 그렇다.″내일 오전 11시까지 와 그라먼 시간이 된께″다음날 아침 전화벨이 또 울렸다. ″낼 비온다 한께 우리 전복양식장 비설거지를 해야 쓰것구만, 오후에 오면 좋것어″그렇게 해서 오경순 해녀를 만나러 금일로 향했다.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를 퍼 부을 듯 먹구름이 가득하다. 철부선에서 내려 동백리에 도착하니 인상 좋은 오씨가 반갑게 맞아 준다.금일읍 동백리에 살고 있는 오경순 해녀는 북제주군(오늘날 제주시) 구좌읍이 고향이다. 그곳에서 18세까지 살다 동네 언니들을 따라 금일읍으로 물질을
아름다운 머리결을 휘날리며 목련과 어울리고 있는 여인은 완도군청 기획예산실 홍보팀의 정지혜 주무관이다.본래는 지난 주 1면에 오를 사진이었다. 조강철 홍보팀장에게 완도의 목련과 어울리는 사진을 요청했더니, 만발한 목련과 함께하고 있는 정 주무관의 사진을 보내왔는데 하필 편집날인 목요일이었다. 이미 잡혀 있는 사진이었기에 교체가 어려웠는데, 조 팀장의 말은 다음호에 싣게 되면, 의미가 퇴색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언론을 상대하는 책임 팀장으로서 시의성을 안다는 건 뛰어난 감각. 하지만 글.해마다 목련이 피어날 때면 떠오르는 노래, "목
완도 여행은 늘 설렙니다. 자동차로 움직이든 버스 여행을 하든 말이죠. 늘 가던 코스대로 가는 것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잘 모르는 곳으로 얼마든지 갈 수 있고, 도착한 마을길을 걸으면 마음이 왠지 편안해짐을 느끼게 되어서 더욱 그런 것 같아요. 때 묻지 않는 완도의 마을길과 해안길은 언제나 낯선 이에게 레트로풍 추억을 떠올리게 해주거든요. 이런 곳을 만나려면, 저는 조금은 불편할지 모르는 마을버스를 타보시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완도 한바퀴를 돌면서 한적한 마을까지 가는 길은 때론 길게 느껴질 수도 있고, 때론 버스를 기다려야 하
연둣빛을 기다리는 꽃잎들이 많다. 연둣빛을 먼저 싹을 틔워 놓고 연주 꽃처럼 싹이 불쑥 오른다. 가을에 상사화는 너무 보고픈 사람이 있어서 먼저 꽃대만 올리지만 3월의 연두 빛 꽃은 대지의 오르막길에서 기다림으로 핀다. 3월은 낯선 얼굴처럼 시작한다. 하지만 3월의 중간 즈음에는 가장 온화한 얼굴이다. 3월의 날씨 변화는 심하다. 아마 낯선 길을 떠나는 이들이 많기 때문에 길들이기 위함이다. 밤하늘을 고요하게 바라보는 것도 꽃의 눈빛이 흔들림 없이 피기 위함이다. 연두 잎을 먼저 내 올린 것도 3월의 쌀쌀함이다. 연두 꽃이 피었을
해질녘이 막 지나가고 뜬 초승달 같은 눈썹에, 마른 대지 촉촉하게 적시는 봄비닮은 속눈썹하며, 속눈썹 뒤로 반짝이는 선량한 눈빛과 눈망울은 만인뿐만 아니라 만물을 포섭한다.연분홍의 작은 입술은 뒷산의 핀 진달래처럼 정겹고 하얀 목선을 따라 내려 온 삼단의 머리결은 능수매화가 뻗은 듯 우아하다.국문과 출신인 미선 씨는 대강 이러한 은유를 써가며 그를 말했다.그러며 또 말하길, 아름다움은 곡선이다.그래서 아름다운 여성은 반드시 곡선을 가지고 있다고. 그 곡선은 외모뿐만 아니라 성격과 내면 깊은 심상까지 두루두루다.그 곡선에 부딪히면 아
청산도에는 유독 제주도의 우도에서 온 해녀들이 많다.같은 출신지인 연줄로 원정물질을 오다 보니 우도 출신들이 다른 지역출신들 보다 많다. 김영혜 해녀 역시 우도에서 태어나 19세 때 청산도로 원정물질을 왔다가 지금의 신랑을 만나 연애를 시작해 20세에 아들을 출산했다.″우리 아저씨를 청산도에 오던 해에 만났는디 그렇게 잘 생겼드라고, 옴서 감서 얼굴이 익고 볼 때마다 서로 가슴이 벌렁벌렁한게 걍 살어부렇지라″″근디, 스무살 때 아들을 출산했는디 우리 아저씨가 군대 문제가 남어 있는 거여" "그래서 신랑은 군대에 가고 나는 아들 키움
오늘 따라 키스(내 맘대로 막 갖다 붙인 길고양이 이름, 서울 집에 있는 강아지 이름이기도 하다)가 갓난아기처럼 칭얼댄다.약간의 쉰 소리로 보채는 듯도 하기고 하고 앵돌아 간 것도 같기도 하다.그러더니 이번엔 연신 앞을 가로막으며 애교인지 시위인지 배를 보이며 발라당 드러눕는다. 한 발자국 내디디면 따라와 또 드러눕기를 몇 번씩 반복하는 녀석.나두고 또 어디가냐고 투정을 부리는 것만 같다. 밥을 줘도 먹지 않고 계속 만져달라고 머리를 들이민다.서울집에 다녀 올 요량에 2박 3일간의 시간을 떠나는 날, 아침이었다.길고양이 세녀석 중
어느덧 캠퍼스가 붐비는 개강일이 되었습니다. 갓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지도를 보며 강의실을 찾는 신입생, 교수님께서 수업을 빨리 끝내주셨으면 좋겠다며 투정부리는 재학생들로 가득한 캠퍼스입니다. 코로나로 지난 2년간 텅 비었던 캠퍼스는 마치 그 시간들이 거짓말이었다는 것처럼 생기로 가득차 있습니다. 4년만에 다시 돌아온 새내기 새로배움터와 간식사업으로 분주한 학생회는 오래된 건물 속을 목소리로 따뜻하게 감쌉니다.수업을 듣는 저의 옆에 23학번 새내기가 있다고 생각하니 1학년 시절이 생각납니다. 코로나로 컴퓨터 속 화면에서 움직이는 교수
″정이란 것이 참 무서워″ ″우리 아저씨는 나보다 한 살 어린디 해녀배를 같이 탔당께! 근디 그 배에 우리 엄마도 같이 타고서 보길도, 노화도쪽으로 난바르를 다녔어! 좁은 배에서 생활하다보니,, 그러다 정이 들고...″ 청산도의 손예순 해녀는 먼 과거를 회상하면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냈다. 손 해녀는 제주도의 또 다른 섬, 우도의 하원목동에서 태어났다고 했다. ″태어난 곳은 큰 동네였어""그런데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엄마가 문주란으로 유명한 하도로 이사를 와서 거기서 살았제, 엄마는 물질다니고 나는 할머니와 살았어″손 해녀는 열
가슴 깊은 곳에서 끊임없이 퍼 날리는 계절이 3월이다. 마른 낙엽 속에서 속삭이는 작은 꽃잎은 사랑이라고 말하리. 사랑한다는 함은 아주 작은 꽃에서 마음을 퍼 울린다. 작은 언덕길 오르다가 너와 눈 마주침이 언듯 너의 손을 잡는다. 마을로 들어간 길목에 가장 가난하게 피어있는 제비꽃은 장차 가장 깨끗한 손이 되고 만다. 기쁨이 넘쳐 많이 피어난 제비꽃은 봄 산으로 들어가 산길이 된다. 햇살은 너를 웃게 하고 저 너머 떠가는 구름은 너를 사랑한다. 작은 연못 가에서 피어나는 단아한 모습도 향기로 묻어나온다. 돌담 밑에서 수줍은 듯 살
우리 시대 100명의 시인들에게 한국 현대시 100년 역사 중 최고의 시(詩)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시인들은 김수영 시인의 ‘풀’을 꼽았다.김 시인의 풀을 보면,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지만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날이 흐리면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무
가장 아름다운 시절에 꽃이 아니면 너는 그때 어디에 있었느냐. 아무도 모르는 골짜기에 내가 스스로 꽃을 피우는 시절. 가장 연약하게 연민으로 피어나는 너. 스스로 꽃을 피우기 위해 이름 없는 너를 보았고. 어느 길에서 머뭇거리다가 네가 이미 지나쳐버린 얼굴을 기억하는 건 시간의 길이만큼 어른거렸다. 지난해 뿌려놓았던 뿌리들이 이제 꽃으로 핀다 해도 그때가 더 좋았으리라. 온전히 너의 얼굴을 본다는 것은 많은 세월이 흘러서야 알았어. 마치 지구가 얼굴을 드러내기 위해서 수천 만년 시간이 흘렀듯이 너와 나는 암흑의 세계에서 몸부림치며
자성을 가진 눈빛. 한마디로 마음만 먹음,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끌어올 수 있는 자성이 있는 눈빛이다. 빛나는 눈동자와 약간은 뻗어 올라간 눈썹, 또 약간은 각진 턱선이 마음 먹은 일은 반드시 실현하고야 마는 저돌적인 역동성이 엿보였다.누구와 닮았냐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여주인공 스칼렛 오하라를 보는 것 같았다.그녀를 추천했던 미선 씨는 "한마디로 강해요! 그래서 아름답구요!" 미선 씨는 누구에게도 터놓고 말할 수 없는 이야기를 자신의 입장에서 들어주고 진정 어린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사람이다고 했다. 또 "언제나 믿어주고